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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애관(愛館) 연구 - ‘협률사’ 설립에서 1945년 광복까지

A study on Aegwan(Love Theater) in In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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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인천에 소재했던 애관의 활동 양상과 역사적 의의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애관의 지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분석하고자 한 논문이다. 애관 1890년대부터 최근까지 존재한 극장으로, 상연 작품의 숫자가 상당하고, 상연 작품 중에 조선연예사와 지역 연예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인천 애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지의 영역을 상당 부분 남겨 두고 있다. 일부 논문을 제외한다면, 한국연극영화사에서 인천 애관에 대한 관심조차 제대로 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관의 주목적은 영화(활동사진) 상설관이었지만, 상설관이라고 해서 영화만 상연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 상영을 주로 하고 연극 공연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공연장이 운영되었다. 동시에 애관은 다목적 극장 공간이었다. 개항장의 중심에 위치했던 애관 주위에는 점차 성당, 불당, 요릿집, 술집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와 유흥의 거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애관 블록(거리)은 하나의 집약된 문화적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규모 집회나 상징적 문화 행사 혹은 집단의 중요 행사를 애관에서 개최하기 시작했다. 애관의 경영자 역시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하면서 애관을 준 공공기관, 즉 공공극장(public theater)으로 격상시켜 나갔다. 애관은 분명 일개 개인이 운용하는 사설 기관이었지만,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공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논문은 애관의 역사와 활동 그리고 기능을 살펴보고, 그 활동 내역과 사적 의미를 바탕으로 애관의 연극영화사적 가치와 지역연예사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애관에 대한 자료는 개항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 신문과 잡지,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관련 논문들로부터 취득했다. 이 연구는 한국 연예역사 복원의 토대가 될 전망이다.

Abstract

This dissertation has been written with a purpose to examine and to understand the works, meaning, and change process of Aegwan(Love Theater) in 1890~40s. For this purpose, this dissertation has been written with a purpose to examine and to understand the structure, the location, the performing works, and the history of Aegwan(Love Theater). Aegwan(Love Theater) is Korean theater for both the film and the drama from 1890s. As yet, the study of Aegwan(Love Theater) isn't progressed. So Aegwan(Love Theater) remains obscurity. This paper intend to examine Aegwan(Love Theater)'s history, activity, feature and works. I study Aegwan(Love Theater) and screening works contained in the magazines and the newspapers in 1890~40s, and film books and conference papers published recently. This study will be a groundwork of the restoration of Korean drama and film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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