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경화사족 金用謙의 삶과 교유
Capital Elite Kim Yong-kyeom’s Life and Companionship in 18th Century Korea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嘐嘐齋 金用謙(1702-1789)은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의 문제적 지식인들은 그와 막역하게 교유하였고, 그와의 관계를 특별하게 기억하고기록으로 남겼다. 이 글은 18세기 후반의 청년들이 왜 김용겸의 주변에 모여 들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의 삶과 교유관계를 추적하였다. 김용겸은 장동김문이라는 노론 세가에서 출생하여 누대에 걸쳐 만들어진 노론 낙론계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런 배경을 둔 김용겸은 정통적인 도학자, 예학자의 면모를 갖춘 노론 낙론계 학자였다. 그러나 김용겸은 당시의 학풍을‘假道學’이라고 규정하고 古禮에 천착하면서 博學을 통해 ‘眞道學’을 추구하였다. 박학은도학을 위한 학문적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학보다는 박학이라는 방법론이 그의 학문적 위상을 대변하게 되었다. 김용겸이 청년들의 이목을 끈 것도 이 지점이다. 그는 기성의 학계에 피로감을 느낀청년들과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長幼와 貴賤을 가리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로 젊은이들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다. 이를 통해 청년들과 김용겸의 교유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김용겸과 청년들의 교유에는 전승해야 할 학문적인 의제도 없었고, 그 관계를 사제관계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나아가 김용겸이 그 중심에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관심사에 따라 어울리며 서로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스스로의 인식을 확장해 갔을 뿐이다. 박학을 매개로 하는 이 같은 학문적 네트워크의 존재를 18세기 후반 한양지식인계의 주요한 속성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life and companionship of Kim Yong-kyeom (1702-1789) through special memories left by capital-based intellectuals in late 18th century. Kim was born to a Noron Jangdong Kim's family and got involved in a broad network of Nakron School formed over a number of generations. From this background, he appeared as a Nakron scholar with aspect of traditional Neo-Confucianist. However, Kim regarded the then academic tradition as ‘fake Neo-Confucianism’ and attempted to pursue ‘true Neo-Confuciansim’ through ancient rites and extensive learning. Extensive learning was an academic methodology for Neo-Confucianism, but the methodology itself turned out to represent Kim’s academic status rather than Neo-Confucianism. It was this aspect that Kim attracted young scholar’s attention. Kim shared ideas with those young people who got exhausted by the established academic tradition and enjoyed academic companionship with them regardless of age or status through his open attitude, and as a result, the network between them was built. Their relationship was not of teacher-pupil relations, and moreover Kim was not even at the center of that network. They just interacted with one another according to their interest, gained knowledge and information, and expanded their own perceptions. This kind of network formed through extensive learning can be understood as a major characteristic of capital-based academia in late 18th century.
참고문헌 (68)
- "승정원일기", ~
- "永禧殿志", ~
- "정조실록", ~
- 金邁淳, "臺山集", ~
- 金尙憲, "淸陰集", ~
- 金時保, "茅洲集", ~
- 金信謙, "橧巢集", ~
- 金履安, "三山齋集", ~
- 金熤, "竹下集", ~
- 金昌緝, "圃陰集", ~
- 金昌翕, "三淵集", ~
- 南公轍, "歸恩堂集", ~
- "金陵集", ~
- 朴胤源, "近齋集", ~
- 朴齊家, "貞蕤閣集", ~
- 朴趾源, "燕巖集", ~
- 朴昌元, "朴澹翁集", ~
- 朴弼周, "黎湖集", ~
- 徐宗泰, "晚靜堂集", ~
- 成大中, "靑城雜記", ~
- "靑城集", ~
- 成海應, "硏經齋全集", ~
- 吳道一, "西坡集", ~
- 李德懋, "雅正遺稿", ~
- "靑莊館全書", ~
- 李書九, "惕齋自述", ~
- "惕齋集", ~
- 李宜顯, "陶谷集", ~
- 李瀷, "星湖僿說", ~
- 李縡, "陶菴集", ~
- 李載亨, "松巖集", ~
- 李最中, "韋庵集", ~
- 趙裕壽, "后溪集", ~
- 趙顯命, "歸鹿集", ~
- 崔錫鼎, "明谷集", ~
- 洪大容, "湛軒書", ~
- 洪良浩, "耳溪集", ~
- 黃胤錫, "頤齋亂藁", ~
- "頤齋遺藁", ~
- 박종채, "과정록―나의 아버지, 박지원" (2003), 돌베개
- 오세창, "槿墨", 성대 박물관 소장, ~
- 李圭象, "18세기 조선인물지 幷世才彦錄" (1997), 창작과비평사
- 구만옥, "18세기 후반 김석문(金錫文)과 『역학도해(易學圖解)』의 발굴-황윤석(黃胤錫)의 『이재난고(頤齋亂藁)』를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 (57), pp.1~59 (2017), 한국사상사학회[DOI]
- 김경, "李德懋의 金昌協 비평 수용 연구 - 李奎報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 어문논집, (78), pp.125~155 (2016), 민족어문학회
- 김문식, "朝鮮後期 經學思想硏究―正祖와 京畿學人을 중심으로―" (1996), 일조각
- 김수현, "黃胤錫의 일기 『頤齋亂藁』에 언급된 樂律에 대한 고찰", 유교사상문화연구, (58), pp.441~472 (2014), 한국유교학회[DOI]
- 김윤정, "18세기 京華士族의 禮學 - 近齋 朴胤源의 『近齋禮說』을 중심으로 -", 서울과 역사, (82), pp.97~140 (2012), 서울역사편찬원[DOI]
- 김태웅, "李漢鎭 編 「靑丘永言」의 특성 탐색", 어문연구(語文硏究), 40(2), pp.217~244 (2012), 한국어문교육연구회[DOI]
-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 연구", 박사, 국어국문학과 국문학전공, pp.2014
- 노대환,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名物學의 전개와 성격", 한국학연구, (31), pp.541~572 (2013), 한국학연구소
- 박권수, "조선 후기 상수학의 발전과 변동", 박사, 과학사및과학철학, pp.2006
- 박미라, "『儀禮經傳通解』의 체제에 나타난 朱子의 禮學思想", 종교와 문화, (3), pp.217~240 (1997),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박종천, "朝鮮 後期 『讀禮通考』의 수용과 영향", 한국실학연구, (20), pp.475~506 (2010), 한국실학학회
- 박현순, "지방 지식인 黃胤錫과 京華士族의 교유", 한국사연구, (163), pp.299~335 (2013), 한국사연구회
- 박현순, "정조대 奎章閣 閱古館 장서의 조성", 한국문화, (82), pp.291~334 (2018),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손태룡, "담헌 홍대용의 음악사상", 한국음악사학보, 1, pp.41~58 (1988), 한국음악사학회
- 송혜진, "조선 후기 중국 악기의 수용과 正樂문화의 성격", 동양예술, (5), pp.127~142 (2002), 한국동양예술학회
- 양원석, "朝鮮 後期 학자들의 文字學에 대한 인식 및 『說文解字注』 수용 양상", 한국어문학 국제학술포럼 제10차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010)
- 吳壽京, "嘐嘐齋 金用謙 硏究", 漢文學報, 2, pp.185~221 (2000), 우리한문학회
- 吳壽京, "연암그룹연구" (2003), 월인
- 이경구, "조선후기 安東金門 연구" (2007), 일지사
- 이지양, "黃胤錫의 書籍 筆寫 및 購入으로 본 京鄕 간의 知識 動向 - 1768년~1771년까지의 한양 생활을 중심으로-", 한국한문학연구, (53), pp.103~139 (2014), 한국한문학회[DOI]
- 정경희, "朱子禮學의 변화와 《儀禮經傳通解》", 진단학보, 86, pp.209~245 (1998), 진단학회
- 정호훈, "조선후기 『花潭集』 刊行의 推移와 徐敬德 學問", 한국문화, (84), pp.43~75 (2018),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조성산, "17세기 후반 경기지역 西人 象數學風의 형성과 의미", 한국사연구, 115, pp.107~139 (2001), 한국사연구회
- 조성산, "18세기 洛論系의 <磻溪隨錄> 인식과 洪啓禧 經世學의 思想的 基盤", 조선시대사학보, (30), pp.135~166 (2004), 조선시대사학회
- 조성산, "18세기 洛論系 學脈의 변모양상 연구", 역사교육, (102), pp.63~95 (2007), 역사교육연구회
- 조지형, "京山李漢鎭의 생애와 문예 활동", 대동문화연구, (71), pp.191~226 (2010), 대동문화연구원[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