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전반 近江毛野臣의 한반도 행적 검토
An Examination of Ohuminokenanoomi's Life i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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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近江毛野臣은 탁순과 안라의 자존을 위한 중재와 야마토 정권의 목적인 한반도 각국의 동향 파악 및 韓子의 통제 및 정리를 위해 파견된 야마토 정권의 사신이었다. 당시 탁순의 아리사 등은 가라와 신라의 통혼을 파탄낸 후 신라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해 있었고, 안라 역시 자국 주변으로 진출하여 걸탁성을 축조한 백제로 인해 자국의 안위를 어떻게 보전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과제에 당면해 있었다. 이에 탁순은 毛野臣을 중재자로 하여 신라와 웅천회의를 개최 하였고, 안라는 신라, 백제 그리고 毛野臣을 참가시켜 안라회의를 개최하였다. 야마토 정권이 탁순 등의 요구에 응한 것은 九州의 盤井세력과 결탁한 신라의 동향 및 열도 내 각 호족이 별도의 루트를 만들어 한반도 제국과 교역을 행하는 것을 통제하여 외교권을 야마토 정권으로 일원화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 문이었다. 毛野臣의 역할 중 탁순과 신라와의 ‘화해상의’라는 중재는 실패로 돌아갔고, 아리사등에게 사소한 일에만 집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귀국을 종용받게 되었다. 毛野臣은 귀국을 거부하고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아리사등이 백 제의 병력까지 동원하여 그를 축출하려 하자 농성 끝에 귀국길에 올랐다가 병 사하고 만다. 『일본서기』가 전하는 모야신의 행적은 ‘임나지배’를 전제로 하여 기술되었지만, 그 실상은 탁순과 안라 그리고 야마토 정권 간 정치적 실 리가 합치된 결과로 도해하였고 탁순과 안라의 국가적 실리를 위해 활약하는 등 양국의 정치적 질서 하에서만 행동하였다. 毛野臣에게 부여된 역할이나 파견된 목적 등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이후 안라와 백제의 외교방식의 다양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안라와 백제는 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왜계관료를 기용하여 야마토 정권과의 외교를 전개해 나가게 된 것이다.
Abstract
Ohuminokenanoomi近江毛野臣, who appeared in the Nihonsyoki日本書紀 keitaiki繼體紀, stayed on the Korean Peninsula for about two years, and was an envoy of the Yamato大和 regime to mediate the existence of Taksun卓淳 and Alla安羅, to understand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o control Hanza韓子. At that time, Taksun's Arishito阿利 斯等 was facing military pressure from Silla新羅 after breaking up the marriage between Gara加羅 and Silla, and Alla was also facing the crisis of country due to Baekje百濟, which advanced near the country and built Geoltak-Seong乞乇城. In response, Taksun held the Ungcheon Conference熊川會議 with Silla with Kenanoomi毛野臣 as the mediator, and Alla held Alla International Conference with Silla, Baekje, and Yamato's Kenanoomi. The Yamato regime sent Kenanoomi to grasp the trend of Silla, that was in collusion with the forces of the Iwai盤井 in Kyushu九州. In addition, the other purpose of the Yamato regime was to control the heads of each state in Japan. Because they created separate routes and traded privately with the Gaya加耶 countries. Among Kenanoomi's roles, mediating Taksun and Silla through "reconciliation" failed, and Ashito's criticism that he focused only on trivial matters prompted him to return his country. Kenanoomi refused to return and tried to make up for his failure, but eventually, when Ashito tried to oust him by mobilizing the troops of Baekje, he was expelled and returned his country. His activities recorded in the Nihonsyoki were described on the premise of "Imna任那 domination", but in reality, he was active for the practical interests of these two countries under the political order of Taksun and Alla. After his ouster, Alla and Baekje appointed "waegye officials倭系官 僚" to prepare for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East Asia in the 6th century amid relations with the Yamato regime. This means that diversification of diplomatic methods has been established, and this is the significance of Kenanoomi's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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