熊津時代 百濟와 倭의 관계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Wa in Woongji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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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백제의 熊津時代에 있어서 倭國과 관련한 전반적인 외교 관계의 추이와 양상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熊津時代의 백제와 왜의 관계는 한성시대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왕실 간에 왕족 외교를 수행하고 있으면서 倭가 군원을 보낼 때마다 백제에서 선진문물의 전달과 전문지식인의 파견이 이루어졌던 외교적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패턴이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근왕대에 곤지계의 피살로 인해 백제와 왜가 알력 관계에 있었다든지, 동성왕대에 왜국의 정세 변화에 따라 일부 소원했을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日本書紀』의 소위 任那 4縣과 己汶, 帶沙의 문제를 통해서는 백제가 가야 지역 서남부 방면의 낙동강 유역으로까지 진출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야마토 정권이 외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던 정황을 알 수 있다. 또한 『日本書紀』에 등장하는 近江毛野臣의 파견 기사와 관련해서도 신라는 백제와 한반도 남부에 대한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야마토 정권이 백제를 지지하는 외교적 입장에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study relationships between Baekje (百濟) and Wa (倭) in Woongjin (熊津) period. As we analyzed relationships between Baekje (百濟) and Wa (倭) in Woongjin (熊津) period, we could understand that the royal family and nobles were dispatched continuously to Japan and that during Japanese military aids professional intellectuals including doctors and Buddhist monks etc. were dispatched from Baekje since Hansung (漢城) period. We could only gauge the trend of estrangement between Baekje (百濟) and Wa (倭) during Gonji(昆支)'s killing and King Dongsung (東城) period briefly. As we observed Imna (任那) 4 prefectures (縣) and Kimun (己汶), Daesa (帶沙) written in Ilbonseogi (日本書紀), we could understand that Baekje (百濟) occupied Nakdong-river (洛東江) area of Kaya (加耶) in the early 6th century. Furthermore, we could find that Yamato Wa (倭) sticked to its position supporting Baekje (百濟) during the war between Baekje (百濟) and Silla (新羅) because of the competitive landscape for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in the early 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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