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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繼體・欽明紀에 보이는 新羅와 倭의 관계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新羅) and Wa(倭) in Keitai-ki(繼體紀) and Kinmei-ki (欽明紀) of Ilbonseogi(日本書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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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는 『日本書紀』 繼體・欽明紀에 기록되어 있는 한반도 관계 기사를 통해 6세기 신라와 일본 열도의 관계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6세기 신라의 對倭 外交의 추이와 야마토 정권의 對한반도 정책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磐井의 亂, 近江毛野臣의 파견, 신라의 남부 가야 진출 등 繼體・欽明紀를 통해 변화하는 신라의 對倭 관계 추이를 고찰한 결과, 신라와 일본 열도,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백제와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 양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신라는 6세기 들어 가야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백제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磐井과 연결했으며 이는 기존 백제와 야마토 정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려 하였던 것이다. 이후 신라는 백제와 한반도 남부에 대한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야마토 정권과의 접촉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야마토 정권은 백제와 가야를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신라의 가야 진출 과정에서 야마토 정권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欽明紀에 들어와서는 고구려에 대한 대항체제를 지켜 나가야 했던 백제와 마찬가지로 야마토 정권의 경우도 신라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6세기 중반에 들어서 한반도 남부의 경우 백제에 의해 주도되던 구도가 신라에 대한 구도로 바뀌게 되자 신라와 야마토 정권도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유하게 되면서 서해안을 통한 대중국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으며 급기야 신라가 가야 전역을 복속함에 따라 일본 열도와 연결되는 해상루트의 개선도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re-establish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新羅) and Wa(倭) in the 6th century written in Keitai-ki(繼體紀) and Kinmei-ki(欽明紀) of Ilbonseogi(日本書紀). First of all, as we analyzed change aspect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Silla (新羅) and Wa(倭) in the 6th century, we could understand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新羅) and Wa(倭) was influenc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百濟) and Yamato Wa(倭). In other words, we could find out that Silla(新羅) established friendly relations with Iwai(磐井) of Kyushu (九州) in order to keep Baekje(百濟) and Yamato Wa(倭) in check and Yamato Wa(倭) sticked to its position supporting Baekje(百濟) during the war between Baekje(百濟) and Silla(新羅) in the early 6th century. Meanwhile, we could understand that Yamato Wa(倭) wanted to improve relations with Silla(新羅) after the competitive landscape for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changed from Baekje(百濟) to Silla(新羅) in the mid-6th century. Therefore, we could observe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新羅) and Yamato Wa(倭) went hand in glove with the transmission of advanced civilization from ancient China and the sea route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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