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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雅言覺非』의 稿本 찾기와 書誌적 고찰

Search for a manuscript and bibliography study oh ‘AhEonGakBi (雅言覺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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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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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언각비(雅言覺非)』의 아언(雅言)은 ‘바른말 또는 늘 쓰는 말’을 통하여 ‘그릇된 것을 깨우친다는 뜻’을 가진 표제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산의 저술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언각비』는 각각의 저술내용의 성격에 따라 형태를 구분하는 분류 표시로 각 권 하단 첫 부분에 ‘談과’ ‘著’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류표시는 다산만의 독특한 분류가 아니라 중국 명나라 왕사정(1634~1711)의 『지북우담(池北偶談)』과 왕동궤의 『이담(耳談)』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북우담』 내용의 조목을 살펴보면 ‘談故, 談獻, 談藝, 談異’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談’을 분류의 한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담』에서 가져온 속담들과 『아언각비』에 나오는 한자어들이 “談”이라는 분류기준에 포함되는 것을 보면 다산에겐 이미 “談”이 나름의 분류 기준으로 인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819년에 저술한 다산의 『아언각비』가 여러 차례의 수정과 개고를 거쳐 필사되어 오는 과정을 통하여 최종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혔다. 25종의 필사본을 근거로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각 필사본 간의 차이를 분석하고 어느 필사본이 선본(善本)에 가까운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여러 차례의 보충(補充)과 개고(改稿)를 거쳐서 계속 변화를 거듭한다. 「보유(補遺)」, 「우보유(又補遺)」가 책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각 자료에 나타나는 수정부분들이 다산이 직접 관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필사본이 『아사미본』이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아사미본은 다산가의 고본(稿本)에 가장 가까운 초고본(草稿本)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검증해 줄 수 있는 것이 「우보유」 중에 ‘빈공(賓貢)’항목의 1차 보충이다. 또한 본문 내용 중에 붉은 색으로 「보유」의 항목이 들어갈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데, “빈공” 항목의 경우만 검정색으로 따로 표시되어 있다. 이점은 다른 항목들과는 다른 시기에 “빈공”이 추가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사미본이 초고본임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이다. 또한 「보유」의 항목 중 『장서각본』과 『조선광문회본(정규영본)』이 “일휘(一麾)”를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산이 의도적으로 “일휘(一麾)”를 삭제한 것이 증명된다. 그러므로 『장서각본』과 『조선광문회본(정규영본)』 그리고 『아사미본』은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곧 수고본임을 증명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기의 필사본들은 김매순과 신작의 서평(書評)을 「제아언각비후(題雅言覺非後)」라는 제목을 달아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하는 형식인데 유독 UC버클리 아사미문고본의 경우는 해당 항목을 두주(頭註)로 처리하여 적혀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것은 아마도 신작이 서찰로 보내온 첨지를 본문 속에 내용과 대조하는 과정에서 붙여 편리하게 보기 위하여 임시로 붙여 놓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본다면 아사미본은 『아언각비』의 수고본(手稿本)에 해당하는 초고본(草稿本)임이 보다 확실해진다고 봐야할 것이다.

Abstract

‘AhEon(雅言)’ of ‘AhEonGakBi(雅言覺非)’ was found to be used as a headword which had the meaning of ‘enlightening the public about the wrong thing’ through ‘right word or general word’. Among the writings of Dasan, ‘AhEonGakBi’ was the only one placing ‘Dam(談)’ and ‘Jeo(著)’ in the first part on the bottom of each book as the classification mark which classified the forms based on the nature of the contents. However, this classification was not unique one made by Dasan, but it was affected by ‘JiBukWooDam(池北偶談)’ of Wang, Sa Jeong (1634~1711) and ‘YiDam(耳談)’ of Wang, Dong Gwe. Looking at the contents of ‘JiBukWoo Dam’, it was classified into four kinds such as ‘談故, 談獻, 談藝, 談異’ and ‘Dam (談)’ was used as one of classification criteria. In addition, as Chinese characters used in proverbs of ‘YiDam(耳談)’ and ‘AhEonGakBi’were included in the classification criteria, it was found that Dasan recognized ‘Dam(談)’ as the classification criteria. ‘AhEonGakBi’ was published by Dasan in 1819. The final version was made by revising and rewriting it several times. We determined which manuscript was close to the original copy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 differences of 25 kinds of manuscripts. ‘AhEonGakBi(雅言覺非)’ was revised and rewritten several times. It was proven by the presence of appendix of ‘BoYu(補遺)’ and ‘WuBoYu(又補遺)’. In addition, it was highly likely that Dasan was involved in modifications in each section. It was ‘Asami copy’ that represented these processes well. Therefore, the ‘Asami copy’ was highly likely to be the first copy which was the closest to the original copy of Dasan. It was supported as follows. The first supplements of ‘BinGong(賓貢)’ in ‘WuBoYu(又補遺)’. In addition, red colors were marked for positions where the items of ‘BoYu’ were located in the main body, but the items of ‘BinGong’ were marked with black colors. It suggested that ‘BinGong’ was added at different times. It was very important evidence to support that the ‘Asami copy’ was the first one. In addition, as ‘JangSeoGakBon’ and ‘JoSeonGwangMunHeoBon (JungGyu YoungBon)’ excluded ‘IlHwi(一麾)’ among the items of ‘BoYu’, it demonstrated that Dasan intended to delete ‘IlHwi(一麾)’. Therefore, as it was demonstrated that ‘JangSeoGakBon’, ‘JoSeonGwangMunHeoBon(JungGyu YoungBon)’ and ‘Asami copy’ were hand writing copies which were close to each other, it was highly likely that some sections were revised and deleted in these copies. Later manuscripts had the appendix of a book review of Kim, Mae Sun with a title of ‘JeAhEonGakBi(題雅言覺非後)’. However, as the copy of the Asami library at UC Berkeley had it as the headnotes, it was special. It was likely that a review was sent as a letter and temporally attached to help him conveniently compare contents of the main body. If it was true, it would be more certain that the Asamicopy was the first one which was the hand writing copy of ‘AhEonGak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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