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저술의 전승과 유통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 - 茶山家藏의 稿本에서 『與猶堂全書』에 이르기까지
Bibliographical Study on the Transmission and Circulation of Tasan's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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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다산 정약용 저술의 전승과 유통에 대해 서지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다산과 그의 제자들이 직접 편찬한 고본에서부터 최초의 全書 간행본인 1938년 완간 신조선사판 『여유당전서』에 이르기까지, 다산 저술의 전승과 유통 양상에 대해 살피었다. 다산의 저술은 간행 형태로 조선후기 필사본/목판본, 근대 이후 20세기초 필사본/연활자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제작자로는 조선후기의 다산가 인물과 그 외 인물, 근대의 조선인과 일본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산 저술의 전승 상황을 보면 조선시대에 정식으로 출판된 저술은 19세기말로 추정되는 목판본 『이담속찬』 하나뿐이고, 나머지 저술들은 필사본의 형태로만 전하고 있다. 저자 사후에 후손이나 집안의 뒷받침이 없이는 출판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조선시대 출판 상황 하에, 500권 100책에 이르는 거질이고 다산의 유배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다산가문의 사정으로 인해 다산의 저술은 조선시대에 제대로 간행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저술은 조선시대에는 ‘필사’의 형태로, 1900년대 이후에는 신식활자본으로 간행되어 세상에 널리 전하게 되었다. 다산의 저서는 다산과 그 아들 및 제자들의 노력에 의해 상당히 완전한 상태의 원고본이 전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저술에는 경세서 및 어학서, 의학서 등 실용적인 서적이 많아 조선 시기에도 이미 필사본의 형태로 상당한 분량이 유통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장지연, 최남선, 정인보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에게 발굴되어 일부 서적들이 꾸준히 연활자로 간행되었다. 이에 더해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지식인들도 그의 저술을 필사하고 연활자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 주도로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간행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서 각 시기에 필사, 간행된 다산 저술의 제작 배경과 목적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지성사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다 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asan Cheong Yagyong's literary works from bibliographical viewpoint. It highlights the characteristic features in the transmission and circulation of the works, from the original versions to the first published complete collection, "Yeo-yu-dang jeon-seo", in 1938. Depending on the era, his works were published in different forms: by woodblock printing in late Chosun and by metal typing in the early 20th century, while they were continually hand-transcribed throughout the time. In terms of the editors, they were mostly published by his own sons and disciples in late Chosun and by various Chosun or Japanese writers in modern era. Woodblock-printed "I-dam-sok-chan" has been found to be the only official publication in Chosun, presumed to be pub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Considering that Tasan's family would have lost power after he was exiled, there would have not been enough support to publish such a large collection of 500 volumes. Tasan's works, however, managed to survive and be distributed in manuscripts through Chosun era and by typing through modern era. By the efforts of himself, his son, and his disciples, nearly complete copies of his original works remained available. As his works included many practically useful books, even in Chosun, there were considerable number of manuscripts circulated and afterwards they were rediscovered and metal-type published by knowledgable scholars such as Jang Ji-Yeon, Choi Nam-Seon, and Jeong In-Bo. In parallel with thi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apanese scholars also published the works by hand-transcribing and metal-typing. From these findings, we can conclude that Tasan's works have been published by diverse entities for a large variety of purposes. By observing the historical or sociological background and the purpose of publication through the eras, we can look into the development of the scholarly community in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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