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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光武戶籍」의 ‘士’와 「民籍」의 ‘兩班’ 기재

A study about the record of ‘Sa’ in 「Kwangmuhojeok」 and ‘Yangban’ in 「Minjeok」 in the 19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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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士’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전형적인 신분체계 가운데 상층계급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의 호적에는 개인에게 국가적 신분체계로 ‘職役’이 기재되었는데, 大韓帝國의 「光武戶籍」에 그것에 대신해서 ‘사’가 처음으로 상층계급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1910년 전후의 「民籍」에는 또다시 그것에 대신해서 ‘兩班’ 등이 기재되었다. ‘양반’은 고려시대의 중앙관료를 귀족신분으로 규정하는 법제적 용어이며, 호적상에 그에 해당하는 자는 관직명이 기재되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법제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단지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상층계급을 의미하여 ‘士族’이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왕조 호적에 이들은 관직자와 과거합격자, ‘幼學’ 등을 ‘직역’으로 기재했다. 그런데 18~19세기의 호적에 ‘양반’을 지향하는 자들이 이러한 ‘직역’들을 대대적으로 기재하게 되었다. 이들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상층계급과의 사이에 괴리가 커져 갔던 것이다. 「광무호적」의 ‘사’는 이러한 괴리를 줄여서 신분체계를 현실화하고자 한 노력으로 여겨진다. ‘양반’으로 인식되어온 족속들에게, 그리고 그 족속들 가운데에서도 대대로 장남으로 이어져온 자에게 ‘사’가 기재되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경제적으로 상층계급인 자를 호적상의 신분 기재에 일치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한 경향을 이어서 식민지 초기의 호적에 ‘양반’이 신분체계의 하나로 기재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재한 자들이 반드시 사회경제적으로 상층계급은 아니었다. 주목되는 점은 유동적이고 현실성을 잃어가는 조선왕조의 신분체계가 대한제국과 식민지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호적에 지속적으로 파악되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오래된 신분체계가 당시의 집권적 인민파악의 이념과 방법으로 활용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정책은 ‘양반 지향적’ 움직임이 전 인민에게 확대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왕조의 신분체계가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 민간에서 양반문화가 대대적인 붐을 일으켰다. 이것도 양반 지향적 경향의 연장선에 있다고 여겨진다.

Abstract

‘Sa(士)’ referred to the upper class of typical status system in traditional East Asian society. In korea household register, everyone was given a state status called ‘Jigyeok(職役)’. But in「Kwangmuhojeok(光武戶籍)」 of Taehanjieguk(大韓帝國; 1896~1910), ‘Sa’ first became term referring to upper class. And in 「Minjeok(民籍)」 around 1910, it was replaced by ‘Yangban(兩班)’. ‘Yangban’ was a legislative term to define central bureaucrat as aristocrat status in Koryo Dynasty who listed his official title in household register. In Joseon Dynasty, ‘Yangban’ was not defined by law, but only meaned upper class by social perception which was called ‘Sajok(士族)’. In Joseon's household register, their ‘Jigyeok’ appeared as official, successful examinee, ‘Yuhak(幼學)’, etc. But in 18~19c, person who was aimed to become ‘Yangban’ is listed as these ‘Jigyeok’ on a large scale. The gap with upper class by social perception became bigger. The ‘Sa’ in 「Kwangmuhojeok」 can be regarded as an effort to reduce the gap and actualize the status system. The relatives who were regarded as ‘Yangban’, especially the first so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end to registered as ‘Sa’. It means the person who is upper class socio-economically is also matched by status record in household register. So in early colonial period's household register, ‘Yangban’ was recorded as one status. But it does not mean the person recorded as ‘Yangban’ is upper class socio-economically. We should notice that the status system which was mobile and deprived of reality in Joseon Dynasty continuously recorded in household register of Taehanjieguk and colonial period. It is can be understood that the old East Asian status system was applied as an idea and method of centralized way of controlling people. And this policy was also related to the tendency of ‘Yangban’ orientation's expension to all people. When the status system of dynasty disappeared, ‘Yangban’ culture was booming extensively. This is also an extension of ‘Yangban’ ori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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