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上代 太子制의 運營과 東宮의 設置
Cho, Bum-hwan The Crown Prince and the East Palace in the Early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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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나타난 태자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를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라 상대에 보이는 태자들이 왕의 장자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실제 태자로 임명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이 태자에 책봉되었다고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그러한 행위나 조치를 통하여 태자로 책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태자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현재의 왕을 이어 다음에 왕위를 계승할 인물이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신라 상대에 있어 태자제의 운영원리가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태자 가운데는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적인 사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신라 초기부터 이어져온 태자제는 진흥왕대 이르러 더욱 확고하게 정립되고 자리잡게 되었다. 진흥왕이 맏아들 동륜을 태자로 책봉하면서 그러하게 된 것이다. 진흥왕은 전대부터 다져온 확고한 왕권을 기반으로 하여 맏아들인 동륜을 태자에 책봉하였으며 그러한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그는 중국을 통해 태자제도에 대하여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였으며 태자의 책봉 의식을 통해 보다 강화된 왕권을 과시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태자로 책봉되면 동궁이라는 곳에 거처하면서 왕위를 계승할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에는 문무왕대 비로소 동궁이 설치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도리어 사료를 검토한 결과 법흥왕대에 이미 동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면서 태자의 왕위계승 수업을 위한 공간인 동궁을 설치하였다. 이 때의 동궁은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월성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태자가 거처하는 곳을 동궁으로 불렀던 것은 이를 나위가 없다. 그런데 신라 초기부터 태자가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더불어 동궁도 함께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동궁은 법흥왕대에 이르러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법흥왕대 이후 동궁에는 세택이라는 관부가 두어졌으며 사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태자시서학사라는 관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자의 글씨를 책임지는 관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태자의 교육에는 유교와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이것도 법흥왕대 이후부터 가능하였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결국 진흥왕대에 이르러 비로소 태자제도가 확립된 것도 법흥왕대의 이러한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후 신라 중대는 상대의 태자제도를 더욱 확대 발전 시켜 나갔다고 생각된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d the term, crown prince in History of Three Kingdoms from multiple angles and the results are as follows. During early period of Silla, the word crown prince is found only once about its installation in the regime of King Jingheung which implies two historical facts that there was crown prince investiture system or at least the one very similar to and being a crown prince meant being a successor of King. However, there were also unsuccessful cases that some crown price were not able to be a King due to complicated political issues. Despite these cases, it was rather a general tendency that a crown prince became a King. The crown prince system initiated in the early Silla was well established in the regime of King Jingheung. He appointed his first son, Dongryun to the thrown using his strengthened royal authority. He learned about investing crown prince from China and showed off his power by holding investment ritual. After being appointed as a crown prince, he should stay East Palace and take lectures to become a successful King. Based on the studies so far, the East Palaces has been understood to be installed by King Moonmoo. However, historical materials show that East Palace was installed in the regime of King Beopheung. He installed East palace, promulgating a code of administrative law. East Palace at the moment was not separate building but in the Wolsung. Regardless its location, it is very certain that where a crown prince stays was called East Palace. However, the history of crown prince and of East Palace do not go together. The crown prince appeared in the early period of Silla while East Palace is believed to be installed during King Beopheung. After the regime of King Beopheung, Setaek was formed and scholars worked in the East Palace. A public post called Taejasiseohaksa exited, which indicates that someone in the palace was responsible for crown prince's calligraphy. Lectures provided to crown prince were mostly confucian. A series of these institutional strategies were all done in or after the regime of King Beopheong. Thus, establishment of crown prince system during King Jingheung was possible under the institutional strategies of King Beopheung. The crown prince system was made further progress in the middle period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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