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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東宮의 성격과 그 변화

A study on the character and changes of the Silla East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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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신라 東宮은 일찍부터 많은 연구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東宮과 太子宮의 관계는 논자들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되고 있다. 이에 비해 東宮官은 주로 太子의 官府로만 한정해 이해되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그 범위 안에서 설명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이 글에서는 東宮의 性格과 東宮官의 관장업무를 재검토해 보았다. 먼저 중국 왕조들의 동궁은 태자의 위상에 따라 동궁의 기능과 구조가 달랐으며, 동궁의 모습은 고정되었다기보다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갔다. 신라는 宗廟와 같은 儒敎 禮制와 중국식 太子 冊封 제도가 확립되는 배경 속에서 문무왕 19년(679)에 태자의 거처로서 동궁이 설치되었다. 또한 東宮은 月城과 一體化되는 왕궁의 확장 형태로 건립되었다. 동궁은 경덕왕 4년(745)에서 애장왕 5년(804) 사이에 태자궁으로서의 의미에서 벗어나 이를 포함한 ‘동쪽 궁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동궁의 주요 시설인 月池는 경덕왕 19년(760)에 대대적으로 축조되어 月城의 연못으로, ‘國王의 宮苑池’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임해전도 국왕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동궁관 산하 9개 관부는 2차례로 나누어 설치되었다. 즉, 경덕왕 11년(752)에 東宮衙가 설치되면서 御龍省과 洗宅이 함께 설치되었고, 그 외에 月池典, 月池嶽典, 庖典, 給帳典, 龍王典, 僧房典 등 6개 관부는 경덕왕 19년(760) 前後에 설치되었다. 동궁관은 동궁의 성격 변화에 따라 재해석해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 동궁과 동궁관이 서로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궁이 변화된 그 시기에 동궁관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東宮官 산하 御龍省과 洗宅, 그리고 龍王典은 기존의 학설과는 다르게 해석해 보았다. 어룡성은 국왕의 近侍관부로, 세택은 국왕의 文翰관부로, 그리고 용왕전은 器物과 佛敎遺物, 우물(井) 등을 관리하는 관부로 파악하였다. 이상으로 신라 동궁의 성격에 대해 월지와 임해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신라 동궁의 전체적인 모습을 일부 측면에서만 조망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동궁관을 태자의 관부로만 한정하여 이해할 것이 아니라, 동궁이 태자궁에서 ‘동쪽 궁궐’로의 성격 변화에 따라 재해석을 하였다.

Abstract

Silla’s Donggung Palace (東宮, Crown Prince’s Palace or, literally, East Palace) has attracted the attention of many scholars from early on. In particular, the relationship between Donggung Palace and Taejagung Palace (太子宮, Crown Prince’s Palace) has been examined and interpreted in various ways by different scholars. However, unlike Taejagung Palace, Donggunggwan (東宮官) has been understood only as a secretariat serving the crown prince, and the scholastic treatment of Donggunggwan has been limited to that extent. This study reviews the nature of Donggung Palace and Donggunggwan. In Chinese dynasties, the function and structure of Crown Prince’s Palaces varied depending on the status of the crown prince, and the shape of the palaces changed over time. Silla built its first Donggung as the crown prince’s residence in the 19th year of King Munmu’s reign, at a time when the dynasty was developing Confucianism ritual systems and the Chinese-style crown price appointment system. The palace was integrated with the Wolseong Palace (月城) as an expansion of the royal palace. However, between the fourth year of King Gyeongdeok’s reign (745) and the fifth year of King Aejang’s reign (804), the meaning of ‘Donggung’ changed from the Crown Prince’s palace to ‘East Palace’ including the former. In addition, Wolji Pond (月池) was made in the 19th year of King Gyeongdeok’s reign (760), and consolidated its status as the ‘King’s Pond’ annexed to Wolseong Palace. Imhaejeon Pavilion (臨海殿) was also used by the king. The nine subsidiary office buildings of Donggungwan were constructed in two phases. Donggunga (東宮衙) was built in the 11th year of King Gyeongdeok’s reign (752), along with Eoryongseong (御龍省) and Setaek (洗宅). The other six buildings were built eight years later: Wioljijeon (月池典), Woljiakjeon (月池嶽典), Pojeon (庖典), Geupjangjeon (給帳典), Yongwangjeon (龍王典), and Seungbangjeon (僧房典). This study reinterprets the meaning of Donggunggwan by tracking the change in its nature. First, Donggung and Donggunggwan are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Second, Donggunggwan was built when the nature of Donggung took a change. Based on these findings, this study proposes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Eoryongseong, Setaek, and Yongwangjeon. The new interpretations regard Eoryongseong as a department serving the king in his proximity (近侍, Geunsi), Setaek as a department responsible for creating writings for the king, and Yongwangjeon as a department tasked with managing various supplies, instruments used for Buddhist rituals, and wells. This study examined the nature of Silla Donggung with a focus on Wolji and Imhaejeon. Therefore, it does not provide a full overview of the palace. However, the contribution of this study lies in the fact that it proposed reinterpreting and extending the nature of Donggung beyond the secretariat of the crown prince, in keeping with the change in the nature of Donggung from the crown prince’s palace to the ‘East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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