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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헌덕왕대 副君의 성격과 貞嬌夫人 - 김헌창의 亂과 관련하여 -

A study on the character of the Silla Bugun and Jeongg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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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新羅 東宮은 지속적인 발굴 성과와 함께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오고 있다. 신라 동궁의 성격과 관련하여, 현재 동궁과 月池宮과의 관계에 대하여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바,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동궁과 월지궁과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주제인 副君 秀宗과 太子와의 관계, 太子妃 貞嬌의 혼인 문제 등을 살펴보았다. 부군의 성격은 憲德王이 자칭하였던 副王과 동일한 것으로, 차기 왕위계승권자인 태자를 의미하는 것이며, 정교는 헌덕왕의 次妃로서 맞이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는 모두 김헌창의 亂과 관련되었다고 하겠다. 수종을 부군으로 삼은 것이 그 난이 신속히 진압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귀결되었고, 그 난에 대한 사후 대응책으로 忠恭의 딸 정교부인을 헌덕왕의 차비로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수종을 부군으로 삼았던 이유는 수종이 上大等을 역임하였고, 부왕의 사례를 遵用하였던 것이다. 부왕은 헌덕왕이, 그 자신이 왕위계승권자의 지위로 있었음을 공식화시키기 위하여 새로이 만들었던 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자의 거소 공간을 포함한 더 넓은 의미인 ‘國王의 동쪽 宮闕’로 변화된 동궁인 월지궁에 부군 수종이 入宮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헌덕왕이 정교를 차비로 맞이한 것은 哀莊王대부터 興德王대까지 정치를 주도하였으며 유력 權力者들의 丈人이었던 충공의 子女였다는 점이다. 이는 王權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대책이었으며, 김헌창의 亂에 功이 있는 충공에 대한 論功行賞의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부군 수종의 월지궁 입궁, 정교의 혼인 문제 등을 이유로 인하여 동궁과 월지궁이 서로 다르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고 하겠다.

Abstract

Silla’s Donggung Palace (東宮, Crown Prince’s Palace or, literally, East Palace) has attracted the attention of scholars over the years, aided by the continued archaeological achievements in the area. Controversy continues over the nature of Donggung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lace and Woljigung Palace(月池宮, Moon Pond Palace)). As such, this study discusses important topics regar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Donggung and Woljigung, inclu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Bugun Sujong(副君 秀宗) and the crown prince, as well as the marriage of 太子妃(Crown Princess) Jeonggyo(貞嬌). Bugun (副君, vice king) has the same meaning as buwang (副王), a title self-proclaimed by King Heondeok (憲德王). Both terms refer to the crown prince (太子, taeja), the first heir to the throne. Therefore, Jeonggyo married King Heondeok as his chabi (次妃, consort). These are related to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One of the reasons why the rebellion was quickly suppressed was that Sujong was appointed as bugun, and King Heongdeok married Lady Jeonggyo (Chunggong (忠恭)’s daughter) as his consort as a follow-up measure. Sujong was appointed as bugun because he served as Sangdaedeung (上大等, the highest government official of Silla). For this reason, following the precedent of buwang, he created a new position, bugun, to officially declare that he is the heir to the throne. It seems to be the reason why Bugun Sujong moved to Woljigung, which was a Donggung in a broader sense, which includes the crown prince’s residence as well as a palace east of the king. King Heondeok married Jeonggyo as his consort because she was the child of Chunggong, who led Silla’s politics from King Aejang to King Heungdeok and had his daughters marry prominent figures. The marriage was intended as a measure to secure the king’s power, as well as a reward for Chunggong’s contribution to ending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Therefore, we cannot reasonably claim that Donggung and Woljigung are two different palaces on the ground of Sujong’s relocation to Woljigung and the marriage issue of Jeonggyo. All of these elements appear to be related to the precaution and follow-up measures against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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