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리지에 나타난 기자조선 인식
Recognition on Kija Joseon Shown from Topographies of Joseon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조선시 지리지는 역 왕조의 영역에 해 서술했고 구체적인 영역 비정은 주로 기자조선 시부터 이루 어졌다. 지리지에서 기자조선은 三朝鮮 중의 하나로 평양의 기자 유적과 기자조선의 영역을 중심으로 서술되 었다. 조선전기에 편찬된 지리지는 관찬 지리지로 기자조선의 영역을 한반도로 국한하며 자세한 영역 비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개인이 편찬한 지리지와 지방에서 편찬된 읍지가 나오게 되었다. 『平壤志』 등의 읍지에 서는 평양을 단군 및 기자의 도읍지로 강조하고 기자 유적 등 기자에 한 내용이 풍부하게 실려있다. 조선시 에 평양의 기자 유적에 해서는 이를 기자와 연관시켜 중요시하는 입장과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시각이 공 존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만주에 한 지식이 증되면서 만주지역을 한국 고국가의 중심지로 보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 시기 지리지에서는 주로 기자가 봉해진 지역과 기자조선의 중심을 여전히 평양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기자 조선의 영역은 만주로 확장해 보면서 영역 변천을 상세히 고증하였다. 하지만 일부 지리지에서는 기자조선의 도읍을 만주로 비정하는 인식이 나타나는데 김정호의 『大東地志』가 표적이다. 김정호의 기자조선 지리 연구 는 기자의 도읍이 평양이라는 기존 역사서의 한계를 극복한 연구로 주목할 수 있다. 조선시 학자들의 기자조선 영역 변동과 지명 이동을 통한 중심지 이동 연구는 기자조선설을 극복한 근 시기에 토착세력인 고조선의 영역 연구로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bstract
The topographies of the Joseon dynasty described the areas of successive dynasties and the positioning of specific areas often began since the Kija Joseon Dynasty. Topographjes describes Kija Joseon(箕子朝鮮) as one of three Joseons(三朝鮮) around the Kija relics in Pyongyang and the area of Kija Joseon. The topographies published in the early Joseon, official ones, could not position detailed areas, because they limited the area of Kija Joseon to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 Joseon, the topographies privately published and Eupjis published from provinces appeared. The Eupjis including 『Pyongyangji』 stressed Pyongyang as the capital of Old Joseon and Kija, and contains a lot of contents about Kija including Kija relics. In the Joseon dynasty, a perspective which stressed the Kija relics in Pyongyang by connecting it with Kija coexisted with the other one which rationally criticized the form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new perspective that recognized the Manchuria area as the center of the Korean ancient nation appeared, as the knowledge of it was increased. In that period, Topographjes still regarded Pyongyang as the area in which Kija was crowned king and the center of Kija Joseon. It also specifically investigated changes in the area, extending the area of Kija Joseon to Manchuria. Some topographies, however, began to position the capital of Kija Joseon as Manchuria and critically perceive the Kija relics located at the Pyongyang area. The representative one of them was Kim Jeongho’s 『Daedongjiji』. It is important to focus on Kim Jseongho’s study on the geography of Kija Joseon, in that it overcomes the existing topographies describing that the capital of Kija was Pyongyang. Joseon scholars’ study on the movement of centers through the changing of Kija Joseon areas and the movement of place names has an implication in that it was inherited to the study on the area of Old Joseon, local powers, in the modern age when the Kija Joseon theory was overcome.
참고문헌 (78)
- "高麗史", ~
- "關西邑誌", ~
- "久菴遺稿", ~
- "東國輿地志", ~
- "東史綱目", ~
- "大東地志", ~
- "宣祖實錄", ~
- "星湖先生全書", ~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世宗實錄", ~
- "新增東國輿地勝覽", ~
- "我邦疆域考", ~
- "熱河日記", ~
- "輿地圖書", ~
- "旅庵全書", ~
- "月汀集", ~
- "應製詩註", ~
- "帝王韻紀", ~
- "平壤志", ~
- "平壤續志", ~
- "漢書", ~
- "海東繹史續", ~
- 강세구, "동사강목연구" (1994), 민족문화사
-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한국고대사 자료집:고조선·부여 편Ⅵ – 지리지·교과서류" (2023)
- 박인호, "朝鮮後期 歷史地理學 硏究" (1996), 이회
- 박인호, "조선시기 역사가와 역사지리인식" (2003), 이회
- 반춘섭, "조선과 명나라 문사들의 기자 담론의 전개:『황화집』 연구" (2018), 박문사
- 배우성, "조선과 중화" (2014), 돌베개출판사
- 배우성,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 (2024), 푸른역사
- 서인원, "朝鮮初期 地理志 硏究:『東國輿地勝覽』을 중심으로" (2002), 혜안
- 신태영, "명나라 사신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 - {황화집} 연구 -" (2005), 도서출판 다운샘
- 송호정, "역사 인식으로 읽는 고조선사" (2024), 경인문화사
- 영남대학교박물관, "(영남대박물관 소장)韓國의 옛 地圖:도판편", ~ (1998)
- 이만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2007), 푸른역사
- 이상태, "김정호 연구" (2021), 경인문화사
- 이찬, "한국의 고지도" (1991), 범우사
- 정구복, "한국근세사학사" (2008), 경인문화사
- 정옥자,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1998), 일지사
- 조성을, "조선후기 사학사연구" (2004), 한울
- 한영우, "朝鮮前期史學史硏究" (1981), 서울大學校 出版部
- 한영우, "조선후기사학사연구" (1989), 일지사
- 허태용, "조선후기 중화론과 여사인식" (2009), 아카넷
- 허종호, "고조선 력사개관" (2001), 중심
- 김경태, "임진왜란 시기 朝鮮·明관계와 箕子인식의 양상", 韓國史學報, (65) (2016)
- 김문식, "18세기 후반 順庵 安鼎福의 箕子 인식", 한국실학연구, (2) (2000)
- 노태돈, "한국사를 통해 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1998), 풀빛
- 류명환, "여암, 신경준 연구" (2022), 학자원
- 민덕식, "고구려 평양성의 축성과정에 관한 연구", 국사관논총, (39) (1992)
- 박병철, "조선 전기 이전의 지리지와 지명", 어문론총, (74) (2017)
- 박광용,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 – 고려부터 한말까지의 사서를 중심으로 –", 한국사론, (6) (1980)
- 박인호, "조선시기 역사지리학의 추이와 특성", 조선사연구, (7) (1998)
- 박인호, "明 淸代 중국 지리서에 나타난 對朝鮮 역사지리인식 : 조선시기 역사지리 연구의 추이와 관련하여", 경북사학, (21) (1998)
- 배우성, "18세기 전국지리지 편찬과 지리지 인식의 변화", 韓國學報, (85) (1996)
- 서영대, "단군과 고조선사" (2000), 사계절
- 徐仁源, "『東國輿地勝覽』에 반영된 自主意識", 역사민속학, (29) (2009)
- 손명희, "조선시대 평양성도를 통해 본 평양의 모습과 지역적 성격", 한국고지도연구, 1(1) (2009)
- 양선경, "16~17세기 읍지의 편찬배경과 그 성격", 대한지리학회지, 18(1) (1983)
- 윤석호, "丁若鏞의 箕子 認識– 古法탐구와의 連動을 중심으로 –", 한국실학연구, (42) (2021)
- 이남옥, "조선시대 箕子 추숭의 과정과 그 의미", 한국서원학보, (16) (2023)
- 이남옥, "『箕田攷』와 조선후기 箕子 遺田에 대한 논의", 조선시대사학보, (109) (2024)
- 이명제, "조선후기 기자의 위상 변화와 조·청 외교에서의 활용 양상", 국학연구, (51) (2023)
- 이상태, "申景濬의 歷史地理 認識 : 疆界誌를 中心으로", 史學硏究, (38) (1984)
- 이은주, "평양 읍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한문학연구, (77) (2020)
- 전덕재, "權擥의『應製詩註』撰述과 古代史認識", 한국문화, (106) (2024)
- 정용건, "조선 후기 문인 사회의 ‘鮮于氏’에 대한 인식 양상과 그 의미", 漢文古典硏究, (46) (2023)
- 조성을, "朝鮮初期 古朝鮮·三韓·三國의 首都와 疆域 認識– 新增東國輿地勝覽을 中心으로", 科技考古硏究, (11) (2005)
- 조성을, "世宗實錄 地理志와 高麗史 地理志의 歷史地理 認識", 朝鮮時代史學報, (39) (2006)
- 조원진, "기자조선 연구의 성과와 과제", 단군학연구, 20 (2009)
- 조원진, "고려시대의 기자 인식", 한국사학사학보, (32) (2015)
- 조원진, "고조선 영역의 최대치와 최소치", 고조선단군학, 45 (2021)
- 조원진, "기자동래설의 성립 과정에 대한 검토", 한국고대사연구, (109) (2023)
- 조원진, "조선시대 기자조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 동북아역사논총, (81) (2023)
- 조원진, "『漢書』의 古朝鮮·漢郡縣·箕子 자료에 대한 검토", 동양학, (92) (2023)
- 조원진, "『魏略』·『三國志』에 나타난 기자조선설의 형성", 한국사연구, 205 (2024)
- 최남선, "朝鮮史의 箕子는 支那의 箕子가 아니다", 怪奇, (2) (1929)
- 최영준, "한국사35(조선후기의 문화)" (1998), 국사편찬위원회
- 한영우, "고려~조선전기의 기자인식", 한국문화, (3)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