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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자조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

Critical Review on Kija Joseon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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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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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시대 기자조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성리학을 건국 이념으로 성립된 조선은 기자 동래를 인정하고 기자조선을 한국사 체계에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자조선을 부정하거나 관련 기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인식들이 있었다. 기자 전승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는 주로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던 기록의 모순점을 지적하거나, 기자가 도읍한 곳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정사신은 『매창문집』에서 기자가 주나라에 조회하고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이야기는 진나라 이후 야인이 만든 이야기를 사마천의 『사기』에서 답습한 오류라고 보았다. 그는 한대(漢代)가 되어야 비로소 중국에서 조선이 있음을 듣게 되었다고 이해했다. 조선 후기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사기』의 기사나 『동국통감』에 인용된 출처가 불확실한 함허자의 글을 비판하는 견해가 꾸준히 나왔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은 기자의 도읍지를 지금의 평양으로 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기자조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그쳤으며 기자조선을 완전히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객관적 시각에서 기자조선 관련 기록을 검토한 이러한 인식은 근대 시기 기자조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d critical awareness on Kija Joseon(箕子朝鮮) in the Joseon(朝鮮) Dynasty. Joseon, which established Sung Confucianism as its foundational principle, recognized the theory that Kija(箕子) came to Korea and incorporated Kija Joseon into the Korean history system, though it was somewhat recognized that the Kija Joseon was rejected from a relatively objective viewpoint or that related records had to be critically reviewed. The Kija tradition has been criticized by two views: it contradicts with the record showing that King Wu enthroned Kija as the king of Joseon; and the capital determined by Kija was not Pyongyang. For example, Jeong Sasin noted in Maechangmunjip(『梅窓文集』) that the story in which Kija paid a visit to the Zhou dynasty and King Wu enthroned him as the king of Joseon, which was created by an unrefined man after Qin, was wrongly repeated in Sagi(『史記』) of Samacheon. He understood that Chine had not heard about Joseon until the Han dynasty. There has been continuous criticism against the article of Sagi, which argues that Kija was enthroned as the king of Joseon, or Ham Heoja’s unauthentic writing quoted in Dongguktonggam(『東國通鑑』). Park jiwon’s Yulha Journal(『熱河日記』) and others negatively recognized the viewpoint that Kija’s capital was Pyongyang. The critical awareness on the Kija Joseon was limited to some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and there was a limit in completely rejecting it. Such an awareness, which make records about the Kija Joseon from a relatively objective viewpoint, in spite of the historical limit, has an implication, in that it led to a full-fledged reconsideration on the Kija Joseon in the moder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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