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사 체계의 재인식
New Understanding of the Framework of the Old Chosŏn's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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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사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3단계로 전개되었다고 보는 3조선설은 조선시대 이래 현재까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근대 이후 기자조선이 부정되고, 그 대신 ‘개아지조선’, ‘韓氏朝鮮’, ‘濊貊朝鮮’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고조선사가 3단계로 계승되었다고 보는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서는 단군과 위만, 또는 기자와 위만의 2조선을 중심으로 고조선사의 체계를 인식했다. 『帝王韻紀』에 이르러 단군의 前朝鮮과 기자의 後朝鮮에 더해 위만을 僭主이나마 추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가 1403년 편찬된 『東國史略』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3조선사 체계가 성립되고, 조선 후기 이종휘의 『東史』에서 前朝鮮-中朝鮮-後朝鮮의 시계열적인 3조선사 체계로 확립되었다. 3조선사 체계는 하나의 계통이 일관되게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3조선의 역사가 조선시대 이후 하나의 계통으로 합쳐진 결과이다. 따라서 고조선사는 전-중-후의 시계열적 체계가 아니라, 시‧공간을 달리하던 3조선의 다원적인 체계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史記』를 통해 그동안 소위 ‘기자조선’으로 칭해왔던 조선과 구분되는 위만조선 이전의 “蠻夷의 조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만이의 조선”이 바로 단군조선과 구분되는 별종의 조선인데, 『管子』에서 文皮의 산지로 齊나라에 알려졌던 ‘發朝鮮’이 이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發朝鮮은 山東의 齊나라와 해상을 통해 교류했다는 점에서 遼東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Abstract
The Theory of Three Chosŏns, which demonstrates that the Old Chosŏn’s history progressed in three stages of Tan'gun Chosŏn, Wiman Chosŏn, and Kija Chosŏn, has been widely accepted thought since the late Chosŏn dynasty until now. Although the existence of Kija Chosŏn was denied and suggested to replace it with Kaeaji Chosŏn, or Hanssi Chosŏn(韓氏朝鮮), or Yemaek Chosŏn(濊貊朝鮮), the notion that the Old Chosŏn’s history progressed in the three stages was hardly changed. Samguksagi and Samgukyusa recognized the Old Chosŏn’s history consists of two stages; the former believed that the history of the Old Chosŏn was made of Kija Chosŏn and Wiman Chosŏn, and the latter Tan'gun Chosŏn and Wiman Chosŏn. Around the time when Chewangun'gi(帝王韻紀) was written, the author added Wiman, though a usurper, to the stages of Tan'gun’s ‘Former Chosŏn,’ and Kija’s ‘Later Chosŏn.’ Although the Old Chosŏn’s three stages seems to consist of a single lineage consistently, it was the result of synchronizing the history of three Chosŏns, which were separated from each other in time and space, into one chronology since the late Chosŏn dynasty. Thus, it is necessary to reexamine the Old Chosŏn’s history as pluralistic framework of the three Chosŏns, which was different in time and space, rather than time series of three st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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