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개성 太平館의 역할과 위상
The Role and Status of Tae’pyeong-gwan(太平館) Hall at Gaes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는 조선시대 개성에 설치한 태평관의 객관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시대별로 살펴서 변화하는 양상을 검토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고려의 정동행성을 수리하여 태평관이라 명호를 고치면서 개성의 객관으로 활용했다. 정동행성은 고려 말에 객관의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이를 태평관이라 명명한 것은 원-고려의 관계를 부정하고 명-조선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한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에는 개성의 태평관이 주요 객관으로 활용되었고, 천도한 이후에는 한양에 설치한 태평관이 그 기능을 대신했다. 이후 개성에 있는 태평관은 그 명칭을 바꾸지 않은 채 명 사신이 한양으로 오기 전 각 지역에 설치한 여러 객관들 중 하나로 기능했다. 개성의 태평관은 임진왜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다른 건물을 활용함으로써 위치가 바뀌기는 했으나 기능에는 변화가 없었다. 청 사신이 한양으로 올 때에도 명 사신과 같은 동선으로 이동해서였다. 이처럼 개성의 태평관은 조선시대 내내 명과 청 사신이 머무는 객관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청 사신이 수로를 이용하여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개성의 태평관은 지역의 객관으로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개성 태평관은 인삼전매국으로 바뀌었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history of Tae’pyeong-gwan, which was located in the Gaeseong area during the Joseon period. Specifically examined here are certain changes it went through. After the Joseon dynasty was founded, the building that had formerly served as space for the Jeongdong Branch Secretariat(Jeongdong Haengseong, 征東行省) was repaired and given the new name Tae’pyeong-gwan, to serve as a residence for foreign emissaries [Gaekgwan, 客館] in the area. Apparently, the Old Jeongdong Haengseong building had already been serving as such facility, and the reason for the replacement of its title would have been to erase its symbolic nature to the Goryeo-Mongol Yuan relationship, and highlight Joseon’s new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Ming dynasty. Gaeseong’s Tae’pyeong-gwan continued to serve its purpose until the capital for the new dynasty was established in Han’yang. After that the Tae’pyeong-gwan in Han’yang took over and inherited its Gaeseong counterpart’s function. However, Gaeseong’s Tae’pyeong -gwan remained as one of several Gaekgwan facilities along the way to Han’yang that would greet the Ming envoys headed for the capital. The location was changed after the war with the Japanese in the 1590s, but its function remained the same. Then,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when Qing emissaries chose Incheon for its entry point to Joseon, and used river ways to reach the capital, the service of Gaeseong’s Tae’pyeong-gwan was no longer required, and the facility lost its purpose for good.
참고문헌 (47)
- "高麗史", 奎貴 3539, ~
- "高麗史節要",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古貴4240-3ㆍ奎 15658ㆍ한국고전종합DB, ~
- "朝鮮王朝實錄", ~
- "承政院日記", ~
- "松都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一簑古915.12-So58jㆍ奎 4983, ~
- "松都續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古4790-15, ~
- "松京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2-4249, ~
- "松京廣攷",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古4790-14, ~
- "中京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奎 4462ㆍ古4790-3ㆍ想白古915.17-G42j, ~
- "拜陵謄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奎 12868, ~
- "宋史", 中華書局 영인본, ~
- "宣和奉使高麗圖經"[URL]
- "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고전종합DB, ~
- "朝鮮古蹟圖譜", 朝鮮總督府藏版, 大塚巧藝社, ~ (1931)
- "四狀元松都同僚契會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장품번호 <본관 4996>, ~
- "1872년지방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기타99999>, ~
- "개성 태평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소장품번호 <건판 70>, ~
- "조선왕조실록"[URL]
- "승정원일기"[URL]
- "명실록ㆍ청실록"[URL]
- "한국고전종합DB"[URL]
- "국사편찬위원회"[URL]
- "한국사데이터베이스"[URL]
- "규장각한국학연구원"[URL]
- "장서각"[URL]
- 김문식, "조선왕실의 외교의례" (2017), 세창출판사
- 서긍, "고려도경" (2013), 황소자리
- 이현진, "조선과 대한제국 의례의 경계" (2022), 신구문화사
- 장지연,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새 권력은 왜 새 수도를 요구하였나-" (2018), 너머북스
- 정은주, "조선시대 사행기록화" (2012), 사회평론
- 구도영, "조선 전기 對明 陸路使行의 형태와 실상", 진단학보, (117), pp.59~97 (2013), 진단학회
- 김경록, "朝鮮時代 使臣接待와 迎接都監", 韓國學報, 117 (2004)
- 김경록, "조선시대 서울의 외교활동 공간", 서울학연구, (31), pp.1~46 (2008), 서울학연구소
- 김문식, "1740년 국왕 영조의 개성 행차", 조선시대사학보, (52), pp.125~156 (2010), 조선시대사학회
- 김버들, "실록에 나타나는 15세기 태평관·모화관 건축과 관련 인물연구", 건축역사연구, 25(4), pp.19~29 (2016), 한국건축역사학회[DOI]
- 金聖七, "燕行小攷-朝中交涉史의 一齣-", 歷史學報, 12 (1960)
- 김우진, "1693년 숙종의 개성 행차와 의미", 한국문화, (88), pp.165~186 (2019),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김지영, "경쟁하는 두 왕조_조선 국왕의 개성 행행 의례와 ‘문명지치’의 약속", 서울학연구, (86), pp.115~141 (2022), 서울학연구소
- 노경희, "17세기 송도 기록에 나타난 개성 이미지의 형성 -고려의 수도에서 조선의 경기로-", 한국한문학연구, (77), pp.147~182 (2020), 한국한문학회[DOI]
- 朴善肅, "조선초기 明使 迎接과 宴享", 석사, 史學科, pp.2016
- 서동천, "조선시대 太平館과 東平館의 특징-文獻史料의 분석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7(1)통권 : 51 (2007)
- 이상배, "조선전기 外國使臣 접대와 明使의 遊觀 연구", 國史館論叢, 104 (2004)
- 이종묵, "황화수창의 공간", 藏書閣, (47), pp.34~95 (2022), 한국학중앙연구원[DOI]
- 李鉉淙, "明使接待考", 鄕土서울, 12 (1961)
- 장지연, "15세기 漢城의 使臣 客館 형성과 그 의미", 서울과 역사, (104), pp.7~36 (2020), 서울역사편찬원[DOI]
- 한정수, "고려 전기 ‘迎契丹使臣儀’의 내용과 의미", 사학연구, (118), pp.159~201 (2015), 한국사학회
- 홍영의, "특집:조선후기 회화와 지도에 기록된 개성의 유적과 경관", 역사와 현실, (79), pp.137~187 (2011), 한국역사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