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북평관의 설치와 기능
Installation and Function of Bukpyeonggwan(北平館)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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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관은 조선전기 여진 외교의 중심 공간으로 내조 여진인의 접대와 교역, 외교교섭 및 정보 수집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던 장소이다. 이곳에서 조선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여진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고려말부터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할때까지 여진인은 개경으로 내조하였고, 이들을 위한 관사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 천도 이후에 조선은 태평관을 먼저 설치한 뒤 태종대와 세종대에 이르러 동평관과 북평관을 설치하였다. 북평관으로 확정되기 전인 1423년(세종 5)부터 야인관을 설치하여 계속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1438년(세종 20) 3월에 동평관을 정비하면서 야인관도 북평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각종 체제도 갖추었다. 한편,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 있던 북평관이 1506년(연산군 12)에 경주‧안동의 京邸로 옮겼다. 여기에 대해 선행연구에서는 모호하게 처리하였으나 각종 사료를 살펴본 결과 경주와 안동의 경저로 쓰이던 장소로 이설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북평관은 늦어도 1426년(세종 8)부터 임진왜란까지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북평관은 접대와 무역뿐만 아니라 여진인의 정보 수집, 여진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왜인 등이 잠시 머무는 공간, 만남의 장소, 일탈의 장소 등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토대로 북평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보완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Abstract
Bukpyeonggwan(北平館) is a central space for Jurchen(女眞) diplomac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played various roles such as entertainment, trade, diplomatic negotiations, and information collection of Jurchen who came to Hanyang. Here, Joseon was able to maintain stable Jurchen relations before the Imjin War. From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until Joseon moved to Hanyang, Jurchen in visited Gaegyeong(開京), and it seems that official residences were prepared for them. After Hanyang(漢陽) cheondo, Joseon installed Taepyeonggwan(太平館) first, then Dongpyeonggwan(東平館) and Bukpyeonggwan From the time of King Taejong to the time of King Sejong. It seems that the Yaingwan(野人館) was installed and maintained from 1423 before it was confirmed as Bukpyeonggwan. In March 1438, when Dongpyeonggwan was renovated, the name of Yainggwan was also changed to Bukpyeonggwan, and various systems were established. Meanwhile, Bukpyeonggwan, which was located in the current Dongdaemun History Park, was moved to GyeongJeo in Gyeongju and Andong in 1506. This was handled vaguely in previous studies, but after examining various historical sources, I think it was moved to a place used as a landscape house in Gyeongju and Andong. Therefore, I think it is very likely that Bukpyeonggwan was operated from 1426 to the Imjin War at the latest. Bukpyeonggwan had various functions and roles, including not only entertainment and trade, but also information collection of Jurchen, a space where not only Jurchen but also Chinese and Japanese people stay for a while, a meeting place, and a place of deviation. Based on this opportunity, we hope that it will be a step to understand the reality by supplementing the existing research on Bukpyeongg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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