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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한양 太平館의 건립과 운영

Construction of Tae’pyeong-gwan(太平館) in the Han’yang Capital during the Joseon dynasty’s early years, and how it was ope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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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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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태조∼세종대 한양에 설치한 태평관의 관명, 태평관의 수리, 주요 기능, 그곳에서 행한 의례 등 한양 태평관의 전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1393년 개성, 1395년 한양에 각각 태평관을 건립했다. 둘 다 ‘수도에 설치한 명 사신을 위한 주요 객관’이라는 면에서 같은 관명을 갖게 되었다. 위치는 숭례문 안이다. 대청과 동・서랑, 구청에서 태종대에 지천사가 사신 반인의 관사로 편입되었고 북루가 추가되고 구청으로 동・서헌을 지었다. 북루와 동・서헌이 추가되기 전 두 그룹의 명 사신이 태평관에 함께 머물게 되었고, 그중 한 그룹이 태조 국장에 조문 온 사신이어서 그곳에서 「영사시제급조부의」를 행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공간 확보의 필요성 대두가 태종대 태평관 건물 구성 변화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세종대에는 태평관의 협소로 인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논의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 대신 기존의 건물을 수리하되 건물 규모를 더 크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새로 생긴 건물은 어실이고, 두목이 많이 왔을 때 주변에 초옥을 지어 대처하면서 태평관의 전반적인 영역도 확장되었다. 회시를 실시할 정도로 광활한 곳이 되었다. 주요 기능은 명 사신을 위한 객관이었고, 그에 따라 연향을 베풀거나 문안 인사, 물품 하사 등의 일이 이루어졌다. 주요 의례는 연향, 「영사시제급조부의」, 배절 등을 행했다.

Abstract

Examined in this article is the Tae’pyeong-gwan Hall, which was constructed in the Han’yang(漢陽) Capital city during the reigns of Kings Taejong and Sejong. Focus of such examination included the name of the hall, its main functions, and how its overall size and scale were established over the years. In 1393, Tae’pyeong-gwan was first constructed in Gaeseong(開城), and then in Han’yang in 1395. Both halls were meant to receive, greet and accommodate Ming Chinese envoys visiting the Joseon dynas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because Gaeseong in 1393 and Han’yang in 1395 were both capitals of Joseon, they shared the same name as well. These halls served as guest quarters for the envoy members. Naturally banquets were held, while paying honors or bestowing items all took place in these halls as well. The location of Tae’pyeong-gwan was inside the Sung’rye-mun(崇禮門) gate. Originally there was a Main office space(Daecheong, 大廳) and the East and West corridors(Dong’rang, 東廊 and Seo’rang, 西廊), but during King Taejong’s reign the North tower(Buk’ru, 北樓) and East and West operational zones(Dong’heon, 東軒 and Seo’heon, 西軒) were added. During King Sejong’s reign mainly repairs of existing structures went on, but a chamber for the King(Eoshil, 御室) was newly erected with thatched houses(Cho’ok, 草屋) additionally built. Because the original space was too small and narrow, more structures were needed while the entire area had to be enlar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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