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4성씨의 결속과 향사(鄕祠)의 변화 과정
The Sdarity of Fur Lneages and the Canging Pocess of Hyang-sa(鄕祠), in J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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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전라남도 진도에 건립된 세 향사(鄕祠)인 봉암서원, 효충사, 향현사를 검토하는 것을 통해, 도서지역이라는 조건에서 누구를 향현으로 내세울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17~18세기, 19세기에 따라 변화하고 있었으며, 형성시의 조건이 1868년 훼철 이후 사우의 복건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음에 주목한다. 이 시설들은 진도의 4성씨와 관련이 있으며, 이들은 15세기까지 진도에 정착해, 16세기 왜란의 공적을 바탕으로 17세기 향안에 이름을 올렸고, 15세기부터 상호간의 통혼을 매개로 결속하고 있었다. 17~18세기에는 유배자를 향현으로 배향하는 봉암서원을 창설하였으나, 19세기 전후로 부계 친족의 조직화로 자기 조상을 향현으로 존숭하면서 창설된 것이 효충사와 향현사였다. 효충사가 창녕조씨의 조상을 모셨다면 향현사는 진도 네 성씨의 조상을 함께 모시는 향사로 자리잡았다.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1868년 훼철된 이후 세 사우는 20세기 들어 다른 운명을 맞는다. 봉암서원은 복건되지 못했고, 효충사는 집안의 사우로 남게 됐지만, 향현사는 4성씨의 협력으로 운영되면서 이제는 진도의 향토문화재로 자리하게 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the two points by researching on Bong-amseowon(鳳巖書院), Hyochungsa(孝忠祠), Hyanghyunsa(鄕賢祠), which were facilities for worshipping ‘the wise man of the district(鄕賢)’ in Jindo, Jeollanamdo, South Korea. First, the perception of whom to present as ‘the wise man’ under the condition of an island was changing according to the 17~18th centuries, 19th century. Second, the reconstruction of the 20th century was constrained by these conditions at the time of formation of worshipping facilities. The four lineages of Jindo are subject of the establishment of these facilities. They settled in Jindo at least before the 15th century. And based on the Order awarded for Japanese invasions of Korea, they were known as the influential lineages in Jindo in the 17th century. And they formed a solid alliance through mutual marriage from the 15th century. The people of Jindo founded Bong-amseowon which worships the exiled due to the limited conditions in the 17~18th centuries. However, in the 19th century, as the paternal kinship groups were organized, they created public facilities to worship their ancestors. That were Hyochungsa and Hyanghyunsa. Jindo people worchipped only Changnyeong Jo’s ancestors in Hyochungsa and the four lineages of Jindo gathered their renown ancestors together in Hyanghyunsa. But since its demolition in 1868, the three facilities had face different fates. Bong-amseowon has not been restored since the 20th century. And Hyochungsa became just a worship facillity of one lineage. However, the four lineages restored Hyanghyunsa together and people in Jindo still regard it as a facility to worship ‘the wise man of the restrict’. And it has now emerged as a cultural heritage of J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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