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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노수신의 진도(珍島) 유배와 주민과의 교우 -노수신의 『소재집(穌齋集)』을 중심으로-

Noh Soo-shin(盧守愼)’s exile and intercourse with residents in Jindo, Jeollanamdo, 16th Century -Centering on 『SoJae-Jip(穌齋集)』 of Noh Soo-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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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연구는 진도에서 19년 동안 유배되어 다양한 기록을 남긴 노수신과 그의 저작인 『소재집』을 진도 기록물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하여, 16세기 중엽의 진도 지역사회를 살펴본다. 이 연구의 목적은 진도에 새롭게 읍치를 창설한지 1세기가 지난 16세기 유배자 노수신의 눈을 통해 진도로 이주ㆍ복귀한 진도 주요 성씨의 정착과 교류 활동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세 가지 부분에 주목한다. 첫째, 노수신이 유배기간 머문 장소를 그의 글을 통해 분석하여 기존에 제시되던 지산면 안치리가 아닌 읍성 서쪽 지역이었음에 주목한다. 둘째, 노수신이 배소와 인접한 진도의 주요 성씨와 교류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이 시기 이미 상호 통혼관계를 맺고 있었고 성황제를 통해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음을 보인다. 셋째, 당시 진도 지배층의 주요 교류 장소로 읍치 동부 지역을 주목한다. 이 지역은 향교를 중심으로 유배대와 당동암 같은 지역 지배층의 교류를 위한 시설이 위치한 곳이었음을 보인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16세기 중엽 진도 읍치의 중심성을 포착하였다. 당시 노수신은 진도 읍치 인근에서 유배생활을 하였고, 읍성 밖 동서쪽에 포진해 있던 진도의 주요 성씨 인물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이 시기 진도 읍치의 동부 지역은 지역의 유력 성씨와 지역의 관리는 물론 문과 출신 유배자까지 함께 모여 교류하는 장소였음을 포착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mid-16th century local community of Jindo through the perspective of Noh Soo-shin, who was exiled to Jindo for 19 years and left various records, including 『SoJae-Jip(穌齋集)』. The aim is to capture the settlement and social activities of the major Jindo lineages who migrated to Jindo after the establishment of a new governing cattle, through Noh Soo-shin’s poetry. To achieve this, the study focuses on three aspects. Firstly, by analyzing Noh Soo-shin’s writings,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location where he resided during his period of exile was in the western area of the fortress, rather than the previously suggested Anchi-ri in Jisan-myeon. Secondly, it reveals Noh Soo-shin’s interactions with the major lineages’ member in Jindo adjacent to Noh Soo-shin’s place, showing that they were already engaged in intermarriages and showcasing their influence through Seounghwang-je(城隍祭). Thirdly, it emphasizes the eastern area of the town as a major exchange hub for the rulling class in Jindo at the time, with facilities such as Hyanggyo(鄕校), Yubaedae(遊杯垈), Dangdongam(唐洞庵). Through these findings, this study has illuminated the pivotal role of Jindo’s urban center during the mid-16th century. During this era, Noh Soo-shin resided in the vicinity of Jindo’s central area, actively engaging with key figures of Jindo’s prominent lineages. Futhermore, it has been revealed that the estern district of the town served as a nexus for interaction, where influential lineage members, local administrators, and even exiles of scholarly and bureaucratic backgrounds conv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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