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지역 고분과 고대 산성의 관계 검토 -경남·고령지역 대형 봉토분과 석축산성을 중심으로-
Relationship between Tomb and Ancient Mountain Fortress in Gaya Region -Focusing on stone mountain fortress and large burial mound tombs in Gyeongnam, Goreyong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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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가야지역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 봉토분이 확인된 고분군 및 그 주변지역에 축조된고대 산성의 자료 검토를 통해 그 관계를 파악하였다. 대형 봉토분이 조성된 고분군은 가야 각 소국의 정치적·문화적 중심 지역으로 볼 수 있으며, 합천 옥전고분군을 제외하고 6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대형 봉토분 조영이 중단되는 반면, 산성 축조는창녕, 함안지역에서 6세기 중반에 축조되는 것을 시작으로 경남 서부지역과 남해안지역으로 확대됨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가야지역 진출과정에서 축조된 산성은 크게 각 지역 중심 고분군 배후 또는 인근에 위치하는 것과 백제와의 국경지대 및 남해안 연안에 위치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신라의 세력확대에 따른 치소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추화산성의 축성을 볼 때, 밀양은 신라에 의해 새롭게 부각된 지역으로 추정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신라의 진출과정에서 백제를 대비한 군사적목적의 축조로 보여 지며, 해안지역에 조성된 폐왕성, 대국산성 등 거제 및 남해지역은 왜구 방어 및해상교역 등의 목적으로 중요시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산성 축조라는 신라의 직접적인 가야지역 진출 이전에 교류 등 문화적 진출이 선행된 것으로보이며, 이는 주요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신라양식 유물을 통해 확인된다. 한편 창녕 교동고분군,계성고분군 등의 경우, 6세기 후반에서 7세기까지 중소형 봉토분이 조성되고 있어 산성 축조 이후에도 재지 문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research figured 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ombs that were revealed with its large burial mound tombs through excavating investigation in Gaya region and ancient mountain fortress that were built in the surrounding area. It can be assumed that the tombs and its large burial mound tombs had been the political and cultural center zone of each small country of Gaya. And while most of the construction of large burial mound tombs stop from mid 6th century with the exception of Ok-jeon tombs in Hapcheon, the construction of mountain fortress expands to west region of Gyeongnam province and southern coast region with the beginning of construction in Changnyeong and Haman region in mid 6th century. The mountain fortresses which were constructed in the progress of advance of Shilla, can be divided into two different form based upon their location. One is located in the hinterland or surrounding area of each different region’s central tombs, while the other one is located in the southern coast of Korea and the border zone of Baekje and Shilla. The former one is assumed that it had acted as a governing fortress to prevent the expanding power of Shilla and when considering the consecration of Choohwa mountain fortress, Milyang is assumed to had been a newly magnified city that Shilla had considered. On the other hand, the latter one is assumed that it had been constructed in the military purpose to be prepared with Baekje’s attack by Shilla which were trying to advance to such region. And the seaside fortresses of Geoje and Namhae region, such as Pyewang mountain fortress, Daeguk mountain fortress and etc are assumed that it had been regarded as important places for the purpose of defending Japanese raiders and sea trade. In addition, before the advance of Shilla to Gaya region which turned out in the form of building mountain fortress, it is assumed that they first conducted a cultural advance, such as trade. And this assumption could be verified through the Shilla style remains that are found in the main tombs of Gaya. On the other hand, in case of tombs in Changnyeong, it turns out that its burial mound tombs was built from late 6th century to 7th century. So we can assume that clay strip culture still continued after the construction of mountain fortress by S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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