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고려인 한글신문 고려일보의 역사와 전망
History & Prospect of Koreilbo for Koreo-Saram in 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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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구소련지역 고려인의 유일한 민족지였던 고려일보가 올해로 창간 95주년을 맞았다. 95년 동안 고려일보는 한국어와 한글문학의 보급 및 보존에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인한 민족의 고립과 분산, 조선어학교의 폐쇄의 결과로 민족어의 빠른 소멸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고려일보가 지켜낸 모국어와 한글문학은 고려인 정체성의 보존과 확장의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려일보는 고려인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이후 고려일보를 통해 모국어 및 한글문학이 부흥되는 물결이 3번 밀려왔었다. 제1의 부흥물결은, 1940년대 후반에 북한으로 갔다가 1950 년대 후반에 되돌아온 문인기자들이 1960년대 초 신문사에 들어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한 시기이다. 제2의 부흥물결은, 모스크바 전연맹 영화대학을 중심으로 몇 개 대학에 재학 중이던 북한유학생 10여명이 1958년 정치적 이유로 소련에 망명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1962년 무렵부터 신문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중앙아시아 고려인 한글문학을 경이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제3의 부흥물결은, 1970년대 초중반부터 사할린 출신 기자들이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모국문학 창작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던시기이다. 현재의 고려일보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고려일보 몰락의 원인은 모국어구사 능력을 갖춘 인재의 고갈이었으며, 이는 고려인이 처한 사회지리적 현상에서 필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예견된 결과였다. 고려일보의 신문에서 전개되었던 중앙아시아 고려인 한글문학이 10여 년 전에 종말을 고했듯이 모국어 신문의 역사도 머잖아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e Koryo Ilbo, the only ethnic Korean in the former Soviet Union, celebrated its 95th anniversary this year. For 95 years, the Koryo Ilbo contributed greatly to the dissemination and preservation of Korean and Korean literature. Especially, the isolation and dispersion of the nation due to the forced migration of Stalin and the rapid extinction of the Korean language as a result of the closure of the Korean language school, the Korean language and the Korean language, In this respect, the Koryo Ilbo will have a very important value in the history of the Goryeo people. After the forced migration to Central Asia in 1937, the wave of revival of native language and Hangul literature was pushed three times through the Goryeo Ilbo. The first revival wave was a period when literary journalists who went to North Korea in the late 1940s and returned to the late 1950s entered the newspaper in the early 1960s and worked vigorously. The second revival wave was a series of academics from Moscow, which led to the exile of 10 North Korean students from several universities, who had been in the Soviet Union for political reasons in 1958. Some of them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newspaper since 1962, and brought up the Korean language literature in Central Asia to a remarkable level. The third revival wave was a time when reporters from Sakhalin entered Kazakhstan from the early 1970s and actively engaged in the creation of their native literature while working in newspapers. The current Koryo Ilbo stands at the crossroads of the demise. The reason for the fall of the Goryeo Ilbo was the depletion of talented people with their native language skills, which was a foreseen result that inevitably progressed in the social geography phenomenon of Koreans. As the Korean language literature of Central Asia, which was developed in the newspaper of the Goryeo Ilbo, ended 10 years ago, the history of the native language newspaper seems to be end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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