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로국 아마기함[天城艦]의 울릉도 최초 측량과 독도인식
The First Survey of Ulleungdo by the WarshipA magi of the Japanese Hydrographic Office and the Office’s Recognition of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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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878년 6월 일본 수로국의 아마기함[天城艦]은 ‘竹島’와 ‘松島’(울릉도)를 측량하였다. 이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처음 조선의 동해와 울릉도를 측량하고 ‘竹島’ 가 존재하지 않는 섬임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일본의 독도 강점과 그논리의 문제점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임에도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는 새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1878년 아마기함이 울릉도를측량한 내용과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일본은 개항 후 해안 측량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에 조선 해안 측량권을 넣었고, 이를 근거로 조선 해안을 본격적으로측량하였다. 이때 외무성에서는 松島를 개척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외무성과 해군성은 아마기함을 파견해 개항장 후보지를 찾고 松島의 실체를 파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878년 6월 아마기함은 竹島와 松島를 조사한 결과, 竹島가 존재하지 않은 아르고노트 섬이며 松島가 조선의 울릉도라고 확인하였다. 당시 아마기함은 일본육군 참모국의 「조선전도」, 영국 해도 2347, 러시아해도 「조선동해안도」, 『중국해역 항해지침』 등을 참고로 측량하였다. 이들 해도와 수로지에는 ‘竹島(아르고노트 섬)’와 ‘松島(울릉도)’뿐 아니라 독도가 경위도상 거의 비슷한 위치에 확실하게 표시되었다. 따라서 아마기함은 ‘竹島’가 가공의 섬이고, 松島가 울릉도라고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또 아마기함은 독도를조사하지 않았지만, 이들 참고자료에 표시된 독도의 존재와 위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중국해역 항해지침』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에 기술된 반면, 오키는 일본 서부 연안에 분류되었다. 따라서 아마기함은 ‘松島’(울릉도)뿐만 아니라 ‘리앙쿠르 록스’(독도)를 조선 영토라고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했던 『중국해역 항해지침』의 분류 원칙은 1904년까지 유지되었고, 일본 수로부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중국해역 항해지침』의 독도와 울릉도 내용은 1880년 6월 아마기함의 울릉도 측량으로 재차 확인되었고, 그 후 일본 수로부가 1907년 3월까지 간행한 모든 수로지에 거의 그대로 서술되었던 것이다. 1878년 아마기함의 울릉도 측량과 독도인식은 그 후일본 수로부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판단된다.
Abstract
The warship Amagi , which belonged to the Japanese Hydrographic Office(JHO), surveyed “Takeshima”(竹島, Argonaut Island) and “Matsushima”(松島, Ulleungdo) in June 1878. This was the first Japanese official survey of Ulleungdo, and it confirmed that “Takeshima” was a fictitious island. This historical survey provides an important basis for understanding the falsehood of Japan’s claim on Dokdo, but it has not attracted appropriate attention until recently. This paper aims to reveal the meaning of the Amagi ’s first survey of Ulleungdo in 1878 based upon newly obtained data. Recognizing the importance of coastal surveys after the opening of ports in Korea, Japan inserted its right to survey the Korean coast into the Treaty of Amity between Korea and Japan in 1876(Treaty of Ganghwa). On the basis of this treaty, the JHO freely surveyed the entire Korean coastline. At that time, there was a debate in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regarding the development of Matsushima. As a result,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he Navy together dispatched the Amagi to determine a suitable place for an open port and to determine whether Matsushima existed or not. In June 1878, the Amagi surveyors concluded that Takeshima was the Argonaut Island that did not exist and that Matsushima was Ulleungdo, Korea. In its survey mission, the Amagi officers referred to The Complete Map of Korea published by the Japanese Army General Staff Office, British Admiralty Chart 2347(The Japan), East Coast of Korea(ВОСТОЧ НАГО БЕРЕГА ПОЛУОСТРОВА КОРЕИ) compiled by the Russian Admiralty, The China Sea Directory, and other texts. In these materials, not only Ulleungdo and Argonaut Island, but also Dokdo, were recorded accurately in nearly the same geographical positions. Therefore, the surveyors on the Amagi precisely recognized that Takeshima was a fictitious island and that Matsushima was Ulleungdo. TheA magi did not survey Dokdo, but the surveyors on board would have recognized its existence by referring to those materials. Ulleungdo(Dagelet Island) and Dokdo(Liancourt Rocks) were described as Korean territory while Oki Island was described as belonging to the western coast of Japan in The China Sea Directory. The Amagi officers thus would have realized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Korean territory. This principle of The China Sea Directory that considered Ulleungdo and Dokdo as Korean territory was maintained until 1904, and was also accepted by the JHO. The contents of The China Sea Directory were verified again in the survey of Ulleungdo by the Amagi in June 1880, and reiterated afterwards in almost all of the sea directories published by the JHO until March 1907. In conclusion, the first survey of Ulleungdo by the warship Amagi of the JHO and its recognition of Dokdo would have provided an important case for allowing the JHO and the Japanese government to recognize Ulleungdo and Dokdo as Korean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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