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현 고시 제40호’와 샌프란시스코조약 전후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 문제
Naming Issues on Ulleungdo and Dokdo in Japan before and after the Declaration of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and Treaty of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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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 외무성은 메이지[明治] 시기 울릉도, 송도(松島), 죽도(竹島)의 관계가 매우혼란스러웠다고 인정했다. 일본 외무성은 1880년 일본 군함 아마기[天城]함의파견으로 울릉도와 송도의 동일성을 판명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일본외무성은 ‘리앙쿠르섬’을 ‘죽도’로 확정했다고 기록했다. 일본 외무성은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 혼란을 독일인 지볼트의 잘못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일본 시마네현은 독도에 관한 명칭 혼란을 『일본수로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외무성과 시마네현은 독도 명칭에 관한 혼란의 이유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일본 외무성은 울릉도, 죽도(竹島), 송도(松島)의 명칭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자국의 부정확한 인식과 정보를 부정하는 모순을 보여주었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 해군수로부가 지볼트의 오기에 근거하여 울릉도를 ‘송도’로, 리앙쿠르섬을 ‘죽도’로 표기했다고 기록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겐로쿠[元 祿] 시기부터 죽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리앙코루섬(독도) 을 한국령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명칭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오키도사는 리앙코르섬을 ‘죽도’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 외무성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자국의 명칭 혼란을 인정했는데, 리앙코르섬이 한국 영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일본은 독도에 ‘죽도’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막부의 한국 영토 인정을 부정할수 있었다. 즉,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로 불렀던 사실을 통해 전근대 울릉도의조선 영토 부정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은 ‘리앙코르섬’이라는 용어를사용하지 않고 독도를 ‘죽도’로 명명하여 향후 울릉도와 독도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죽도’ 탄생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막부는‘죽도(울릉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했지만 시마네현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 해군 『일본수로지』가 울릉도를 마쓰시마[松島]라는 명칭으로 사용하여 시마네현은 이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은 1905년 전후 명칭의 혼란을일부러 유도하여 죽도(竹島, 독도)에 대한 한국 고유영토설을 부정하는 효과가있었다. 결국 시마네현은 울릉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싶은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로 고착되자, 독도에 일부러 ‘죽도’라고 명칭을 붙였다. 시마네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 ‘죽도’ 명칭의 유래였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고의적으로 명칭의 혼동을 유발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논리였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s the secret behind the creation of the geographical name, Takeshima. Shimane Prefecture Office intended to claim Japan’s dominion over Ulleungdo. As hydrographic maps published by the Japanese Navy marked Matsushima on the location of Ulleungdo,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could not name Ulleungdo as Takeshima.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purposedly gave Dokdo a Japanese name, Takeshima, as Ulleungdo had been confirmed as Korean territory. In this context, the chaos surrounding the geographical names was fundamentally attributable to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which attempted to register two Korean islands in the East Sea, Dokdo and Ulleungdo, as Japanese territory under its jurisdiction. However, when historical facts confirmed that Ulleungdo had been Korean territory, theShimane Prefecture Office started to try incorporating Dokdo under its jurisdiction. In order to achieve such goal, very chaotic situation was made on purpose by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in regards to the names of Dokdo and Ulleungdo around 1905. To conclude, Japanese occupation of Dokdo was closely related to the Russo-Japanese War that broke out in February 1904. The Japanese government illegally incorporated Dokdo into its territory in February 1905, before the end of the war. The last naval sea fight, the Battle of Tsushima, broke out in the waters near Dokdo. The Japanese Navy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a watchtower in Dokdo in August 1905. Further, the Japanese government granted Nakai the watchtower as a special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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