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百濟와 倭 왕실의 관계 -왕실 간 혼인관계를 중심으로-

A Study on Relationship between Royal Family of Baekje and Wa -Focused on marital relations among royal family-

1

조회

0

다운로드

1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本考는 사료상에 나타난 百濟와 倭 왕실의 왕족 간 인적 교류를 통한 화친 및 혼인 관계에 주목하여 백제와 왜의 관계에 대해 재조명해보고자 하였다. 백제와 왜 왕실 간에 이루어졌던 왕족의 교류는 397년 아신왕대의 전지의 파견 이래 백제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즉, 백제와 왜가 軋轢을 보였던 毗有王과 三斤王의 치세 및 倭가 외교적 다변화 양상을 보였던 6세기 후반 이후 잠시 교류의 단절을 보이고 있지만, 豊璋의 파견까지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백제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제와 왜 간에 있었던 왕족 외교에 대한 일본학계의 통설은 약소국이 강대국에 보내는 인질로 이해되어 정치적, 군사적인 지배와 복속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시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백제와 왜 왕실 간에 이루어졌던 왕족 교류를 분석한 결과, 대체적으로 혼인을 통한 화친이 있었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本考의 분석 결과, 백제와 왜 간에 있었던 왕실 간의 교류를 야마토 왕실에 의한 지배, 복속 및 책봉관계로 보고 있는 기존 일본학계의 견해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百濟와 倭는 아신왕대 이후 혼인을 통한 왕실 교류를 기본으로 한 인적 교류가 원인이 되어 양국의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인적 교류를 통해 정치적 혹은 군사적 화친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왜에 친백제 세력을 확립하고 역으로 백제에 친왜국 세력을 도모하여 양국 화친의 기반을 이루었다. 이러한 화친을 기반으로 해서 백제에서 왜로 선진문물이 전해지고 한반도의 전쟁에 있어서 백제의 요청 시 왜의 구원병이 파병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백제와 왜 왕실의 관계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혼인을 매개로 한 화친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re-establish the relationship of political marriage for peace treaty between Baekje and Yamato Wa. Political exchanges of royal family between Baekje and Japan had persisted until the fall of Baekje since the year 397 of the King of Asin. According to the analysis, for a while Baekje and Japan had broken off diplomatic rel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of Biyu, King of Samgeon, and period of the late sixth century. But still, their mutual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kept appear until the fall of Baekje, indeed sending Pungjang. The analysis about the royals said, their exchanges from these two countries was usually found through marital relationship. Generally, conventional wisdom from Japanese academic circles maintained that the hostage diplomacy between Baekje and Yamato Wa is just political and military subordinate to Japan as like a dominant-subordinate relationship. However, this article show that Japanese academia's opinion doesn't hold water when it comes to a situation like this Baekje and Yamato Wa seem to keep their culture and more exchanges based on this marital relationship after the age of Ashin king. In addition, they can keep their political or military relationship as friendly through this personal exchange. Therefore, Baekje accomplished extending pro-Baekje influence in Japan furthermore, expanding pro-Japan power in Baekje as well. We could observe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Yamato Wa was their cultural exchanges by marriage between the two royal families and that the transmission of advanced civilization from Baekje to Yamato Wa corresponds to support of Japanese military power to Baekje. Therefore, relationship of Baekje and Wa has to be figured out as keeping eyes on diplomatic relations according to the marriage in East Asia at that moment.

참고문헌 (51)

  1. 金善民, "『日本書紀』에 보이는 豊璋과 翹崎", 日本歷史硏究, 11, pp.32~ (2000)
  2. 金壽泰, "百濟 義慈王代의 太子冊封", 百濟硏究, 23 (1992)
  3. 金壽泰, "百濟의 滅亡과 唐", 百濟硏究, 22 (1991)
  4. 김영심, "百濟의 ‘君’號에 대한 試論的 考察", 백제연구, (48), pp.1~32 (2008), 백제연구소
  5. 金恩淑, "6세기후반 신라와 왜국의 국교 성립과정", 新羅의 對外關係史 硏究-신라문화재학술발표회논문집, 통권 : 15, pp.186~187 (1994)
  6. 金鉉球, "大和政權の對外關係硏究", pp.301~316 (1985), 吉川弘文館
  7. 김기섭, "세기 무렵 백제 渡倭人의 활동과 문화전파, in 왜 5왕 문제와 한일관계", 한일관계사연구논집, 2, pp.227~228 (2005)
  8. 김기섭, "백제 동성왕의 즉위와 정국 변화", 한국상고사학보, 50(50), pp.5~21 (2005), 한국상고사학회
  9. 김현구, "2002년 학술회의 : 백제문화를 통해 본 고대 동아시아 세계 ; 백제와 일본간의 왕실외교 - 5세기를 중심으로 -", 백제문화, (31), pp.31~40 (2002), 백제문화연구소
  10. 김현구,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Ⅱ" (2003), 일지사
  11. 羅幸柱, "古代朝日關係에 있어서의 ‘質’의 意味", 建大史學, 8 (1993)
  12. 나행주, "왜 왕권과 백제신라의「質」- 왜국의「質」導入受容의 의미 -", 일본역사연구, (24), pp.29~88 (2006), 일본사학회
  13. 盧重國, "5세기 韓日關係史의 성격 개관, in 왜 5왕 문제와 한일관계", pp.28~29 (2005), 한일관계사연구논집 편찬위원회
  14. 盧重國, "七世紀 百濟와 倭와의 關係", 國史館論叢, 52 (1994)
  15. 盧重國, "百濟政治史硏究", pp.151~152 (1988), 一潮閣
  16. 大橋信弥, "日本古代の王權と氏族", pp.126~ (1996), 吉川弘文館
  17. 藤間生大, "倭の五王", pp.36~ (1968), 岩波新書
  18. 末松保和, "任那興亡史", pp.79~89 (1956), 吉川弘文館
  19. 飯田武鄕, "日本書紀通釋" (1930), 內外書籍
  20. 山尾幸久, "古代の日朝關係", pp.158~160 (1989), 塙書房
  21. 山尾幸久, "日本國家の形成", pp.35~ (1975), 岩波書店
  22. 西本昌弘, "豊璋と翹岐-大化改新前夜の倭國と百濟", ヒストリア, 107 (1985)
  23. 宋浣範, "七世紀の倭国と百済", 日本歷史, 686 (2005)
  24. 양기석, "三國時代 人質의 性格에 대하여", 史學志, 15, pp.55~56 (1981)
  25. 연민수, "5세기 후반 백제와 왜국, in 고대한일관계사", pp.414~ (1998), 혜안
  26. 연민수, "백제의 대왜외교와 왕족, in 고대한일관계사" (1998), 혜안
  27. 鈴木英夫, "大化改新直前の倭国と百済-百済王子翹岐と大佐平智積の来倭をめぐって", 続日本紀研究, 272, pp.17~18 (1990)
  28. 鈴木靖民, "東アジア諸民族の國家形成と大和政權, in 講座 日本歷史 1", pp.202~206 (1984), 東京大學出版會
  29. 熊谷公男, "5世紀 倭·百濟關係와 羅濟同盟", 백제연구, (44), pp.171~188 (2006), 백제연구소
  30. 이기백, "백제왕위계승고", 역사학보, 11 (1959)
  31. 李道學, "漢城末 熊津時代 百濟王系의 檢討", 韓國史硏究, 15, pp.15~17 (1984)
  32. 이도학, "漢城末 熊津時代 百濟王位繼承과 王權의 性格", 韓國史硏究, 50 (1985)
  33. 李在碩, "5세기말 昆支의 渡倭 시점과 동기에 대한 재검토", 百濟文化, 30, pp.26~28 (2001)
  34. 이정희, "古代 日本의 采女制度", 日本學報, 44, pp.585~587 (2000)
  35. 井上光貞, "大化改新と東アジア, in 岩波講座 日本歷史 2" (1975)
  36. 정재윤, "百濟 王族의 倭 派遣과 그 性格 -昆支를 中心으로-", 백제연구, (47), pp.1~28 (2008), 백제연구소
  37. 鄭載潤, "熊津時代 百濟政治史의 展開와 그 特性", 박사, pp.1999
  38. 鄭孝雲, "古代韓日政治交涉史硏究", pp.86~89 (1995), 學硏文化社
  39. 주보돈, "熊津都邑期 百濟와 新羅의 關係, in 古代東亞細亞와 百濟", pp.197~198 (2003), 충남대백제연구소
  40. 池內宏, "百濟滅亡後の動亂及び唐・羅・日三國の關係, in 滿鮮史硏究(上世第二冊)", pp.108~ (1960), 吉川弘文館
  41. 淸木和夫, "軍主小考, in 日本古代の政治と人物", pp.99~ (1977), 吉川弘文館
  42. 坂元義種, "古代東アジアの日本と朝鮮" (1978), 吉川弘文館
  43. 胡口靖夫, "百濟豊璋王について-所謂「人質」生活を中心に", 國學院雜誌, 80(4), pp.37~ (1979)
  44. 홍성화, "4~6세기 百濟와 倭의 관계-『日本書紀』내 倭의 韓半島 파병과 百濟·倭의 인적교류 기사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36), pp.3~38 (2010), 한일관계사학회
  45. 홍성화, "5세기 百濟의 정국변동과 倭 5王의 작호", 한국고대사연구, (60), pp.75~115 (2010), 한국고대사학회
  46. 홍성화,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一考察", 한일관계사연구, (34), pp.3~39 (2009), 한일관계사학회
  47. 홍성화, "熊津時代 百濟의 王位繼承과 對倭關係", 백제문화, (45), pp.43~66 (2011), 백제문화연구소
  48. "三國史記", ~
  49. 노중국, "백제의 骨族 의식과 골족 範圍", 한국고대사연구, (50), pp.193~232 (2008), 한국고대사학회
  50. "日本古典文學大系 日本書紀 下", 岩波書店
  51. "日本書紀", ~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