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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황도유학’ 전개 과정과 일본제국주의의 확장

The development process of “Whangdo Confucianism” and the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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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920년대 일본의 ‘데모크라시’의 흐름 속에 천황제와 국민 통합에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한학 진흥책’을 통해 ‘천황에 효’를 다하고 국가에 ‘충’을 바치는 ‘국민도덕’을 강화시켰다. ‘대동문화학원’의 설립과 황도유학을 기본으로 한 ‘일본 유교’란 개념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전개됐다.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가 만주로의 확대를 꾀하면서 ‘황도유학’은 ‘동양 도덕’이란 이름으로 식민지 조선과 대만, 만주로 전개됐다. ‘황도유학’의 본질은 대동문화학원의 교육 목적과 동일한, ‘황도 및 국체에 醇化한 유학’이며, 이는 ‘皇學’의 의미를 그대로 포함한 것이었다. 이러한 ‘황도유학’의 실현은 ‘내지’ 일본과 그 외 지역 간의 철저한 차별과 서열을 만들면서 진행됐고, 각종 의례는 그를 체현하는 장으로써 기능했다. ‘유시마 성당’이 일본 황실가의 친왕이 담당하는 사문회의 근거지로 활용되는 동안, 조선의 ‘경학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유시마 성당의 공자제는 ‘만주국’의 푸이(Pu-yi)가 참배를 올 정도의 위치였지만, 경학원의 문묘석전은 남녀노소 구분 없는 관람의 장소에 불과해, 대중의 볼거리로 각종 가이드북에 실렸다. 일본제국주의가 확대되면서 ‘황도유학’은 점차 그 권위가 높아졌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그 이름은 신기루와 같이 사라졌다. 해방 후 조선의 경학원 역시 성균관이란 옛 이름으로 복귀되면서 ‘유교의 전통 기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전통’과 식민지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그 흔적의 실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키워준다.

Abstract

The Japanese government felt a crisis in the emperor system and the national integration of “democracy” in the 1920s. The government strengthened “national morality” through “measures for the promotion of Chinese literature” in which the public considered “the emperor with filial piety” and gave their “loyalty” to the nation. The establishment of Daito Bunka Gakuin(大東文化學院) and the appearance of the concept of “Japanese Confucianism” unfolded in this social background. As Japanese imperialism attempted to expand into Manchuria in the 1930s, “Whangdo Confucianism” spread into Colonial Joseon, Taiwan, and Manchuria under the name of “Eastern ethics.” “Whangdo Confucianism” was “Confucianism purified to Whangdo and the political system of Japan,” which was identical to the goal of Daito Bunka Gakuin, and it contained the concept of “kogaku” (皇學) as it stood. The realization of such “Whangdo Confucianism” was conducted under strict discrimination between “inland” Japan and other areas, and various formalities functioned as its embodiment. Joseon’s “Kyonghakwon” was a space to which everybody had free access. But “Yushima Seido” was used as the base for Sibunkai (斯文會) of which a Japanese prince of the blood was in charge. People of all ages could walk around in the “Munmyoseokjeon(文廟釋奠)” of Kyonghakwon while the status of the memorial ceremony of Confucius of Yushima Seido was significant enough for Pu-yi of Manchukuo to visit to pay their respects. Kyonghakwon’s Ritual for Confucius was degraded to be “something to see” rather than a prestigious ceremony, and it was introduced in various tourist guidebooks in Japan. With the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Hwangdo Confucianism" gradually rose in its authority, but after Japan's defeat, its name disappeared like mirage.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Kyunghakwon of Joseon is also remembered as the traditional institution of Confucianism, as it has returned to the old name of Sungkyunkwan. These examples give us a look at the relationship between 'tradition' and the colonization and give us a critical view of the status of the t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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