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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유림과 일본 사문회(斯文會)의 교류

The interaction between the Joseon Confucianists and the Japanese Sibunnkai in Japanes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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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근대 일본의 관제 유림단체인 사문회와 식민지 조선유림의 교류를 살펴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일찍이 식민지 조선의 내선융화를 목적으로 조선유림의 유시마성당 참배와 사문회 방문을 기획했다. 일본에 간 조선유림들은 사문회를 방문하고 유시마성당을 참배한 후에는 사문회 회원으로부터 사문회 및 일본유학에 관한 강연을 들어야 했다. 3·1운동 후, 조선총독부는 사문회 인사들을 조선에 초청했다. 그들은 문묘 석전에 참석한 후, 경학원이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은 일제의 식민지 조선 지배와 통치방향에 관한 것으로, 일본 국가주의에 입각한 일본유교를 강조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경학원잡지≫에 수록되어 전국의 유림들에게 널리 배포되어 읽혔다. 한편, ≪사문≫에도 조선유림의 글이 실렸는데, ≪사문≫에 반영된 조선유림의 모습은 피식민의 모습이자 교화의 대상일 뿐이었다.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유시마성당이 재건되면서 1935년 사문회에서는 성당재건기념 유도대회와 공자제전을 개최했다. 유도대회는 황도유학의 이론화와 선전을 통해 군국주의를 고취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유도대회에는 조선측 인사도 참여했는데, 이들은 경학원의 주요 구성원이자 사문회 회원, 공자의 후손, 1932년에 조직된 유림단체인 조선유교회의 대표자였다. 그리고 상업종사자, 요리종사자, 일본 유학 경험자 등 전통적인 유림의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참가도 있었다. 이들의 등장은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유림의 성격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interaction between the Sibunkai, a controlled Confucian group in modern Japan and the Confucianists in Colonial Joseon.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ad earlier planned the worship of the Yushima Seido and a visit to the Sibunnkai of the Joseon Confucianists by the Confucianists for the purpose of Harmony between Japan and Korea(內鮮融和). After visiting the Sibunnkai and worshipping at Yushima Seido, the Joseon Confucianists they were required to listen to a lecture by a member of the Sibunnkai. After the March 1 Movement,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vited members of the Sibunkai to Joseon. After attending Munmyo-seokjeon(文廟釋奠), they gave a lecture at the conference hosted by the Gyeonghakwon(經學院). The lectures were about Japan's domination of colonial Korea and the direction of governance, emphasizing Japanese Confucianism based on Japanese nationalism. Its contents were irecorded on the Journal of Gyeonghakwon and were widely distributed and read by Confucianists across the country. On the other hand, the Sibun also contained articles of the Joseon Confucianists, and the appearance of the Joseon Confucianists reflected in the the Sibun was only an image of colonization and an object of edification. As the Yushima Seido, which was destroyed in the Kanto Great Earthquake, was rebuilt, the Sibunkai organized the Competition of Confucius to commemorate the reconstruction of the Seidol and the Ceremony of Confucius in 1935. The Competition of Confucius was an important opportunity to inspire militarism through the theorization and propagation of the Imperial Confucianism. Joseon's personnel also participated in the judo competition, which was a major member of the Gyeonghakwon, a member of the Sibunkai, and a descendant of Confucius. They were a representative of the Joseon Confucian Association(朝鮮儒敎會), a Confucian group organized in 1932. There were also participants from people who deviated from the traditional Confucian category, such as commercial workers, culinary workers, and Japanese study experiences. Their appearance also suggests that the characteristics of colonial Joseon Confucianism have changed significantly since the 1930s from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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