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명사(明使) 영접의례의 전개와 『번국의주(藩國儀注)』의 위상
The Development of the Receiving Ceremony to Ming’s Edicts and The Status of Beonguk-euiju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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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초기에 제정되고 시행했던 명사 영접의례는 명과의 천자국-제후국 관계와 더불어 왕조 개창 이후의 국가 과제를 고려한 것이었다. 이러한 여말선초 명사 영접의례의 정비에는 명에서 제작하고 고려에 보내준 ‘번국의 의주’들과 조선 초기 이들을 집성한 『번국의주』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명사 영접의례는『번국의주』를 저본으로 자주적인 보완과 상세화 작업의 성과물이었으며, 그 작업의 저변에는 현실 수행의 필요성과 외교 의례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재인식이 작동되었다. 내용상의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대 이후 명사 영접의례에 관한 대외적 논쟁과 내부 논의에서 항상 『번국의주』를 준거로 제시하며 조선 조정의 주장을 피력했다. 명 고황제 주원장으로부터 받은 『번국의주』는 국초부터 계속 준행한 것으로, 조선의 의례 전통과 외교 역사에 합류한, ‘제후국의 조종지법’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 하에 교외에서 조서를 맞이할 때 행할 배례나 사용할 이동 수단에 대한 조선 나름의 독자적 규정은 명분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 초기의 지배층들은 『번국의주』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텍스트를 하나의 의례 자원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황제 문서의 영접 순서나 국왕 상향 여부 등 문제에서 『번국의주』의 규정은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려된 여러 의견 또는 비교 대상의 하나였다. 『번국의주』는 명에서 제작하고 보내준 것이지만 텍스트의 수용 및 전유를 통해 조선은 그에 대한 ‘자결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명사 영접의례의 제정과 개정은 그러한 ‘자결권’ 행사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the government designed and conducted the receiving ceremony to Ming’s edicts in consideration of the suzerain-vassal relation with Ming and the issues of new state’s building. ‘Etiquettes for Vassal States’, sent to the late Koryo Dynasty from Ming and assembled as the book Beonguk-euiju in King Taejong’s reign, had played an essential role during this period. Firstly, the government established the receiving ceremony by copying Beonguk-euiju as well as partially adapting it out of operational necessity and their comprehension to the symbolic meanings of the etiquettes. Secondly, despite the adaption, from King Sejong’s reign the government presented Beonguk-euiju as criteria in discussions on the receiving ceremony. On one hand, Beonguk-euiju, described as an authority which was received from Zhu Yuanzhang-the founder of Ming and had been consistently applied since Chosŏn’s foundation, turned into a part of ancestor’s laws that integrated with Chosŏn’s conventional decency and diplomatic history. Thus regulations like king’s bowing or using a sedan chair when receiving emperor’s rescripts gained legitimacy through the reference to Beonguk-euiju although they were not declared in it. On the other hand, based on the thorough understanding of Beonguk-euiju, the etiquette makers appropriated the text as an ritual resource. For example, in the discussion on the order of receiving different edicts or the person who offers insence, the government invoked Beonguk-euiju as one of the reference opinions and for solving immediate problems, did not adopt its regulations. By accommodating and appropriating Beonguk-euiju that came from Ming, Chosŏn Dynasty retained its right of self-determination in the development of the receiving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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