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迎詔禮 운영과『蕃國儀注』
The Operation of YeongJo Ritual and ‘Bunkukuiju’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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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말기에는 고려 측이 작성한 ‘迎大明詔使儀’에 따라 영조례가 거행되었다가, 조선에 들어서는 한동안, 정확히는 세종 10년 예조에 의해 ‘迎詔儀’가 작성되기 전까지 영조례는 명이 사여한 『蕃國儀注』‘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치러졌다. 그런데 ‘迎大明詔使儀’는 『번국의주』‘蕃國接詔儀注’를 저본으로 하여 그것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어서, 고려말기 이래 세종 10년 ‘迎詔儀’의 작성 전까지 영조례는 사실상『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거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 10년 ‘迎詔儀’는『번국의주』‘蕃國接詔儀注’를 저본으로 하면서 이를 상세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의례 절차의 기본 구성뿐만 아니라 각 부분 내 세부 절차마저도『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와 사실상 동일하였다.『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는 명 측이 불특정 번국을 대상으로 하여 조서를 맞이하는 절차를 개괄적으로 서술한 성격의 것이었기에, 세종 10년 ‘迎詔儀’는 영조례가 이루어지는 곳인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원활한 의식 거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단위 의절들 간에, 혹은 단위 의절 내에 존재한 미비한 지점들을 메우는 식으로『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보완․상세화하였다.『세종실록』 오례 ‘迎詔書儀’는 세종 10년 ‘迎詔儀’와 의례의 구성과 세부 절차 등에서 다른 바가 없다. 그렇기는 하나 세종 10년 ‘迎詔儀’가 의주대로만 의식을 거행해도 될 정도로까지 빈틈없는 매뉴얼로는 기능하지 못한 것과 달리,『세종실록』 오례 ‘迎詔書儀’는 이에 전적으로 의지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이처럼 영조례는 고려말 이래 기본적으로『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거행되었는데―세종 10년 ‘迎詔儀’와『세종실록』 오례 ‘迎詔書儀’의 작성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영조례 운영의 방식은 세종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달라졌다. 세종대 이전에 영조례는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토대로 하면서도 다소 편의적이고 임기응변 식으로 거행되었다고 한다면, 세종대 들어서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에 걸맞은 ‘제대로 된’ 영조의례를 거행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영조례 실행을 놓고 禮義 등의 관점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스스로 찾아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세종대에는 그 이전과 달리 東國에서 東人이 주체가 된 이상적 문명 중화의 구현에 걸맞은 ‘제대로 된’ 영조의례를 거행하고자 한 노력이 경주된 것이다.
Abstract
Since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ritual for receiving the imperial order of the Ming was basically carried out in accordance with ‘Bunkukuiju’ given by the Ming Dynasty. The protocol for YeongJo Ritual in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was a copy of ‘Bunkukuiju’ and its substantial portion was transcribed. Before the year 1428, the Joseon made direct use of ‘Bunkukuiju’. However, since 1428, the Joseon used ritual codes written with ‘Bunkukuiju’ as the base. They supplemented and elaborated rough ‘Bunkukuiju’. Key words : YeongJo ritual, Bunkukuiju, Koryo dynasty, Joseon dynasty The way of operating Yeongjo ritual was changed by using the King Sejong period as a turning point. Prior to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Yeongjo ritual was based on ‘Bunkukuiju’, but was somewhat convenient and ad hoc. In the reign of King Sejong, Yeongjo ritual was operated in a desire to materialize ‘ideal’ Yeongjo ritual, which is in line with their ideological orientation. There is a movement to find solutions to problems that could be problematic from the point of view of Yeui(禮義) and the like in the process of the execution of the Yeongjo ritual by on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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