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전기와 조선초기 국상 시 황제국 측의 조문 외교 의례의 비교 탐색
The Comparison of Diplomatic Rites for condolences by the Chinese Imperial State after the death of the King between the early Koryŏ and early Chosŏ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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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필자는 그간 賓禮나 嘉禮에 수록된 외교의례가 원 복속기를 분기점으로 하여 전면적으로 전환된 사실과 그 역사적 의미를 규명해 왔는데, 본 작업은 이것의 연장선에서 凶禮에 수록된 외교의례 면에서도 큰 폭의 전환이 있었음을 규명하고자 한 시도이다. 國喪 시 외교의례는 책봉국에 행하는 (외교)의례와 이것에 응해서 황제국 측에서 행하는 弔問 (외교)의례로 구분될 수 있는데, 본고는 이 가운데 국왕의 사망 후 황제국이 행하는 조문 (외교)의례에 초점을 맞춰 고려전기와 조선 초기를 비교 검토한 연구 결과물이다. 곧 국왕 사후 황제국 측이 조문 차원에서 행하는 외교의례 면에서도 고려전기와 조선 초기 간에 질적이고 단절적인 차이가 가로놓였음을 규명하고, 이러한 시대적 차이가 말해주는 역사적 함의를 탐색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고려전기에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예식 절차(의주)에 따라 황제국 측이 행하는 弔問 (외교)의례를 치른 것과 달리, 조선(초기)에서는 명 황제가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서 국왕의 사망에 조문하는 의례들인 賜祭 의례, 賜賻 의례, 賜諡 의례를 전례 없이 명 측이 작성하여 조선에 보내준 해당 의주를 토대로 거행한 사실을 부각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였다. 특히 명 측의 행보가 조선에 국한된 것으로 사실상 조선 측의 請諡와 告訃에 의해 유발되어 수동적으로 행한 일이었을 사실을 주목하였다. 다음으로는 고려전기에는 起復 의례가 거행되었지만 조선(초기)에는 그렇지 않은 양 시기의 차이를 부각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였다. 특히 각 시기 국내에서 행해진 ‘嗣位’가 갖는 대외적 위상의 차이가 기복 의례 시행 여부와 어떤 식으로 연관되는지를 주목하였다. 기복사의 파견 유무 외에 또 다른 이질적인 점은 조선에서는 賜諡 의례가 거행되었으나 고려전기에는 그러지 않은 사실인데, 이러한 차이와 그 맥락을 파악해 보았다. 마지막으로는, 각 시기 황제가 사망한 국왕을 위해 (사신을 보내) 제사를 행하는 의례라 할 수 있는, 고려전기 祭奠(勅祭) 의례와 조선의 賜祭 의례 간의 여러 이질적 양상을 검토했다. 특히 고려전기 祭奠禮는 상하 차등적 군신 관계를 반영하면서도 군주 대 군주로서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사망한 외국 군주를 추모하는 성격의 의례인 데 비해, 조선의 賜祭儀禮는 군주가 신하를 대상으로 諭示하며 은전을 베푸는 諭祭를 명 황제가 사신을 보내 조선국왕에게 내리는 의례였음을 규명하였다. 아울러 양상의 차이가 시사하는 역사적 함의도 탐색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in terms of diplomatic rituals performed by the Chinese Imperial State at the level of condolences after the death of the king, it was clarified that there was a large epochal gap between the early Koryŏ and early Chosŏn period. And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is epochal difference were explored. Specifically, by means of the ceremonial procedure prepared by Koryŏ in the early Koryŏ Dynasty, the Chinese Imperial state performed the diplomatic rites for condolences.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the Ming emperor dispatched envoys to Chosŏn to condolence upon the death of the king, and the envoys executed Saje (賜祭), Sabu (賜賻) and Sasi (賜諡) ritual, which were conducted based on the ceremonial procedures unprecedentedly prepared by the Ming side and sent to Chosŏn. And I tried that this fact was highlighted and its meaning was clarified. In particular, it was noted that the action of the Ming side was confined to Chosŏn, and in fact, they were passively acted upon by the Chosŏn side’s Choengsi (請諡) and Kobu (告訃) ritual. Next, while Kibok (起復) ritual was held in the early Koryŏ period, it was not like that in early Chosŏn perio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periods was highlighted and the meaning was explored. In particular, attention was paid to how the difference in the external status of the 'enthronement' held in Korea during each period was related to whether or not the Kibok (起復) ritual was performed. Another disparate point is the fact that Sasi (賜諡) ritual was held in Chosŏn but not in the early Koryŏ period, and this difference and its context were investigated. Lastly, various heterogeneous aspects between Jejŏn (祭奠) ritual in the early Koryŏ period and Saje (賜祭) ritual in Chosŏn were reviewed. In particular, Jejŏn (祭奠) ritual in the early Koryŏ period was ceremonies that reflected the differential relationship between superiors and subordinates and at the same time commemorated deceased foreign monarchs by the Chinese emperor on the premise of a relationship between monarch and monarch. In contrast, it was found out that Saje (賜祭) ritual in the early Chosŏn period was a ceremony in which the Ming emperor sent an envoy to give praise and instructions to the Chosŏn king. In addition,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e difference in aspects were also expl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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