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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웅진천도의 역사적 배경

Historical Background of Baekje’s Capital City Relocation to U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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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논문은 475년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게 된 배경을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웅진천도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인한 한성 함락과 국왕의 참살이라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고구려군의 약탈과 파괴로 인해 한성이 폐허가 되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읍지를 찾게 되었다고 보았다. 웅진은 한성과 지리적인 형세가 유사한 곳으로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수월한 곳이었다. 우선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고, 충적대지를 끼고 있어 농사에도 유리한 지역이었다. 또한 금강 수운을 이용해 대외 교류와 물자 이동 등에 편리한 교통의 요지였다. 신라와 왜 등으로부터 구원병이 왔을 때 접근하기 쉬운 곳이기도 했다. 웅진천도를 주도한 세력은 문주와 그와 함께 움직인 왕족과 중앙귀족이었다. 웅진의 재지세력들이 천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지는 않다. 웅진천도는 불과 한 달 만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획적인 천도였다고 볼 수는 없다. 대신에 웅진은 이미 성곽과 궁실 등 기반시설이 갖춰진 지방지배 거점이었으므로 갑작스런 결정에도 천도 후 왕도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웅진천도는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준비된 곳으로의 천도였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rough the literature record the historical background for the King Munju(文周王) to move Baekje’s capital city to Ungjin(熊津) in 475 AD. The results can be briefly summarized as follows. It was re-affirmed that the national crisis of the fall of Hanseong(漢城) and the killing of the King by Goguryeo’s attack was a direct cause of moving Baekje capital to Ungjin. I think because Hanseong became ruined due to the plundering and destruction of the Goguryeo army, and Hanseong could not function anymore, Baekje searched a new city. Ungjin was an appropriate place with a facade as the capital as a place similar in geographical shape to Hanseong. It was a terrain favorable for defending, and it was also advantageous for agricultural work because it was surrounded by the alluvial ground. It was also a gist of transportation convenient for foreign exchange and material transfer, using the Geumgang(錦江) river water transportation. It was also a place that was easy to access when relief soldiers came from Silla and Japan. The forces leading Ungjin transition capital were the King Munju, the royalty and the central aristocrat who moved with him. It does not seem that the local powers of Ungjin exercised influence on the transfer. Since the capital relocation to Ungjin was held in only one month, it cannot be regarded as a planned event. Instead, Ungjin was able to function as a royal city after the sudden decision, because it was a Damno(檐魯) which was a local ruling base equipped with infrastructures such as fortress and palace. Though the relocation was not planned, it can be said to be transferred to a prepare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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