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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신라 大等 성격에 대한 검토 -진흥왕대 비문 분석을 중심으로-

A Review on Daedeung Character of silla in the 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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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大等은 흔히 신하집단, 상급신료, 또는 고위관등의 범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大等이 등장하는 적성비, 창녕비, 마운령비를 살펴보면 大等의 수, 관등, 역할이 다양해서 어떠한 특징과 기준을 추출할 수 없다. 금석문마다 大等이 조직된 기준을 명확히 해야 大等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할 수 있다. 3개 금석문의 大等을 분석한 결과 大等은 고정적인 집단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왕에 의해 다르게 구성되는 임시적인 집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살필 수 있다. 적성비의 大衆等은 적성 전투에 있어 논공을 위해 왕의 敎를 받은 5명이고, 창녕비의 大等은 왕과 전문성을 가진 某大等, 四方軍主들과 함께 가야 경영에 대해 회의를 하기 위해 21명으로 구성되며, 마운령비의 大等은 정복한 지역을 순수하는 과정을 통솔할 7명으로 구성되었다. 기본적으로 大等의 역할은 왕과 기타 관직들 사이에서 그 사안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총괄 감독하는 것으로 보인다. 大等은 관등의 하한이 뚜렷하지 않고 그 스펙트럼이 넓은데, 이는 大等 안에 직접적으로 실무를 담당하는 부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大等은 某大等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그 등장 시기는 上大等의 설치 이전으로 볼 수 있으며, 법흥왕대로 추정된다. 大等은 부체제가 해체되고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정 운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련의 개혁을 함께 한 집단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大等은 왕과의 이해관계 일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대다수가 喙部, 沙喙部 소속이었던 것이다. 진흥왕대 중앙집권화 과정이 가속화되면서 점차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 복잡해지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발생하면서 임시적으로 大等을 구성하여 처리했던 것을 일부 제도적으로 고착시켜 某大等이라는 관직으로 분화되었다. 이후 점차 大等은 유명무실해지면서 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즉 大等은 왕의 정국 주도권이 강화되는 과도기의 시점에서 왕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6세기’의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Daedeung(大等) has been commonly considered as a general title of a subject group, an upper grade group or a high official ranking. However, according to Juk Sung Monument, changnyeong Monument, Mawunlyung Monument that are found Daedeung, it is difficult to extract any feature and criteria about Daedeung because there are various numbers, official lights, and roles of Daedeung. It is only by clarifying the criteria on which Daedeung has been organized that it can properly define the nature of Daedeung. An analysis of the three Epigraphics shows that Daedeung is not a fixed group, but a temporary group composed differently by the king according to matters. Basically, Cheng's role seems to be to oversee the matter so that it can be resolved well between the king and other officials. The lower limit of the official ranking is not apparent and the spectrum is broad, which means that there was a class directly responsible for practice within the Daedeung. The date of its emergence can be seen prior to the establishment of Sangdaedeung(上大等), as it has been divided into Modaedeung(某大等), and is presumed to be the reign of the Beopheung Dynasty. In the process of dissolving the Bu-system(部體制) and moving on to managing state affairs centered on the king, It may be seen as a group that has undergone a series of reforms. As the process of centralization of the Jinheung Dynasty was accelerated, matters that had to be dealt with gradually became complicated and tasks that needed expertise occurred, Temporarily constructed Daedeung was separated and stuck in a government position called Modaedeung. Since then, it is likely that Daedeung has gradually disappeared. In other words, it is a political force of the 6th century based on the king's close interests at a time of transition when the king's political power is strength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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