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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신라적성비」 연구 현황과 쟁점

Research status and current issues of ‘Danyang Silla Jeok-seong-bi(丹陽新羅赤城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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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고대사 연구에서 金石文이 지니는 의의는 매우 크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국가가 주체가 되어 한강 유역에 위치한 단양 ‘赤城’에서 왕의 교시를 받은 異斯夫 등 ‘大衆等’과 ‘幢主’와 ‘軍主’ 등 상당수의 사람들이 ‘也尒次’라는 인물의 공적을 치하하며 있었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기록하여 세워진 비석이다. 고대국가에서 영토의 확장과 그에 따른 유공자의 공훈을 새기고,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한 비석을 세우는 국가의 시책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더욱 비문을 통하여 신라 律令制度 특히 佃舍法 등 신라의 토지제도를 이해할 수 있으며, 小子ㆍ小女 등 인구를 성별․연령별로 파악했던 당시의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또한 ‘幢主’ 및 ‘軍主’ 등을 통하여 신라의 지방제도 및 그 성격을 살펴볼 수도 있다. 앞으로 비문에 나오는 핵심적인 개념에 대한 재검토 및 인식의 확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적성비」에 보이는 ‘書人’과 ‘石書立人’의 개념을 중심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말 그대로 ‘글을 쓴 사람’과 ‘비석에 글을 새겨 세운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6세기의 신라 사회가 이미 각 분야의 전문 영역으로 분화되었던 사회였음을 알게 해준다. 이같은 사실은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이제까지의 「적성비」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사 및 사회, 경제사 중심의 연구 영역이 보다 확대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Abstract

The meaning of Epigraph Relics in ancient history studies is very great. “Danyang Silla Jeok-seong-bi(丹陽新羅赤城碑)” is a monument built in Danyang, located on the banks of the Han River. High-ranking central officials ordered by the king gathered to commemorate the achievement of a man named ‘Ya-i-cha(也尒次)’. In ancient countries, the state's policy of rewarding people with national empowerment is very important. In additio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monument, we can understand Silla's governing system and social system. Although many research achievements have been made through the monument, further review and recognition of inscriptions are needed. In particular, it is necessary to expand the research area, such as the concept of ‘Se-in(書人)’ and ‘Seok-seo-ib-in(石書立人)’ recorded in the inscription. This is because the Silla society of the 6th century was a society that was divided into specialized fields. It is time for more attention and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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