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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업료>와 조선영화의 좌표

Choe Ingyu’s the Sueopryo And the Josoen Cinema’s Coordi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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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예술체육

초록

최인규는 일제 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감독의 한 사람이다. 영화 <수업료>(1940)를 시작으로 하여 최인규는 <집 없는 천사>(1941), <망루의 결사대>(1943), 제작, 기획, 연출보좌), <태양의 아이들>(1944), <사랑과 맹세>(1945) 등 일제의 정책에 부합하는 일련의 국책 영화를 연출하였다. 이 영화들은 일제가 주도한 이른바 ‘영화신체제’에 부응하는 영화들이며, <수업료>는 그 첫 순서에 놓이는 영화이다. 영화 <수업료>는 『경일소학생신문』 현상공모 당선작 「수업료」를 원작으로 삼았다. 이 당시는 일제가 육군특별지원병령과 제3차 개정교육령을 나란히 공포하던 시기이다. 당시 교육령의 개정은 일본 군부의 요구에 상응하여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 시기 교육에 대한 강조는 그러한 정치적 배경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영화 <수업료>는 영화 <지원병>과 거의 동시에 기획되었고, 같은 시기 제작된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도모다찌>는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아동물이었다. 제작자 이창용은 ‘내선교류의 실현’을 내걸고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와 배우 우스다 겐지를 섭외하였다. 제작자 이창용과 영화 기획에 참여한 니시키 모토사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담당한 야기 야스타로는 모두가 조선의 영화신체제를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언어의 측면에서도 <수업료>는 ‘신체제’에 부합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한 첫 번째 영화’였고, 조선어 발성영화의 일본어 발성영화로의 전환에 있어 획기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학교와 그 외의 장소로 구분되는 이 영화의 공간은 일본어와 조선어로 정확히 구분된다. 이러한 이중어의 상황은 조선의 언어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동시에 조선영화의 일본어화에 하나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수업료>는 향토색을 드러냄에 있어 기존의 과장되고 이그조틱한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로컬리티를 둘러싼 전략에 있어 <수업료>는 현실 그대로의 조선을 취하되 제국의 일부로서의 조선을 그리는 전략을 택하였다. <수업료>가 그려낸 학교는 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고, 그것은 미래의 조선–일본화한 조선의 모습 그 자체였다. 영화 <수업료>는 이후 본격화하는 영화신체제 구축에 한 발 앞서 조선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둘러싼 제국의 영화담론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영화 <집 없는 천사>는 <수업료>의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제작될 수 있었다.

Abstract

Choe Ingyu was one of active movie directors in the end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 beginning of his works was the Sueopryo, (1940). After that he directed a series of policy movies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These movies encountered with a demand what was called ‘New Order of Cinema’. The Sueopryo was the first movie. The movie’s scenario was a prizewinner of Gyoungilsohaksengsinmun(경일소학생신문). At that time, imperialist Japan announced the third educational law as well as the particular army volunteer order. The revision of educational law had accomplished by the demand of Japanese military authorities. Such political background emphasized an education that was important thing. The Sueopryo was projected with the Jiwonbyeong at the almost same time. At the same time, the Tomodachi was children’s film which had made by Simiz Hirosi that had propaganda for ‘the practice of oneness of Korea and Japan’. A producer Yi Changyong arranged Japanese a scenario writer Yagi Yastaro and Japanese actor Usuda Kenji under the slogan of ‘inter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They were leaders who had leading the ‘New Order of Cinema’ of Joseon. Moreover the Sueopryo corresponded with ‘New Order’ at the side of language. The film was the first movie which used Japanese voluntarily and attracted people’s attention as epochal film in a linguistic conversion from Korean to Japanese. The space of the movie separated school and other place where divided according to Japanese and Korean. Such the bilingual situation reflected a lingual condition exactly in Joseon. At once, this film showed a good example that could use Japanese in Joseon cinema. Furthermore the Sueopryo didn’t take exaggerated and exotic existing forms to show the local color. To show the local color, the movie took with a strategy that highlighted a school to describe Joseon as a part of Empire. The school in the Sueopryo wasn’t different with Japanese school. It was Joseon in future–Japanese Joseon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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