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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중국식 이름문화 수용 과정의 고찰- 백제왕과 왕족의 이름을 중심으로 -

A Study of Baekje’s Inclusion Process of Chinese Naming Customs - Focused on the Names of Baekje Kings and Royal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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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의 이름은 성씨와 시호 등 중국식 이름 문화를 수용하면서 그 내용과 구성에서 변화를 겪는다. 백제의 전체 시기는 백제왕명의 변화양상에 따라 전통식 왕명시기, 성씨 도입기, 중국식 왕명시기 등의 세 시기로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전통식 왕명시기는 백제왕이 전통방식의 한 개의 이름을 가졌던 시기이다. 시조 온조왕부터 제12 대 계왕까지로 즉위 전후나 생전과 사후에 모두 한 가지 이름을 사용하였다. 두 번째는 성씨도입기이다. 백제왕들은 전통방식의 이름과 ‘부여’ 혹은 그 축약형인 ‘여’ 성씨 등의 두 가지 이름을 가졌다. 이때 성명은 전통식 왕명의 이름자를 취해서 성씨에 붙이는 방식으로 만드니, 전통과 신문화의 과도기적 양상이 왕명에서도그대로 보인다. 근초고왕부터 삼근왕까지이다. 이전시기와 마찬가지로 전통방식의 이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고, 성명은 중국과의 교류 등 특정 경우에 제한적으로 쓰였다. 세 번째는 중국식 왕명시기이다. 동성왕이 시호를 가지게 되면서 백제왕의 이름은 살아 있을 때 사용하는성명과 사후의 시호 등 두 가지 이름으로 체계화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왕명에도 전통성은 남아 있다. 휘를먼저 만들고, 성씨를 나중에 붙이는 초기 성명 방식의 흔적이 보이며, 전통식의 이름이 존재하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성씨 없이 이름(휘)만으로 지칭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성씨 도입기에 백제왕은 전통식의 이름을 쓰다가, 즉위 즈음에 중국과 교류상 요구 등의 필요에 의하여 성씨를 넣은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성씨의 사용이 대내외적으로 왕자(王者)임의 과시와 상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백제에서 왕족집단 구성원 모두가 일상적으로 성씨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던 사실은 부계혈족집단의 표지라는 성씨의 내용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백제의 실제 친족집단과 (중국식의) 성씨집단 사이의 괴리가 그 원인일 수 있다. 중국식 왕명시기에도 여전했던 백제왕명의 전통성은 백제사회에서 성씨문화의 이해와 수용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Abstract

The names of the kings of Baekje undergo a change in their content and composition while adopting Chinese Naming Customs such as family names and posthumous epithets. The history of Baekje can be divided into the traditional name era, early family name era, and the Chinese name era. First, the traditional name era is when the kings of Baekje had a single name according to traditional customs. From the founder King Onjo to the 12th ruler King Gye, rulers would use one name before or after their reign or death. The second era is the early family name era. The kings of Baekje had two names, one of the traditional method and the other using “Buyeo” or the abbreviation “Yeo” as a family name. Names during this time were formed by attaching the first name of the traditional regnal name to a family name, showing the transitory nature of tradition and new culture in the names of kings. This era is from King Geunchogo to King Samgeun. Like the former era, the traditional name was used in daily life, and the family name was added only in certain circumstances such as exchanges made with China. The third era is the Chinese name era. As King Dongsung used a posthumous epithet, the names of kings were systemized into a name during their lifetime and a posthumous epithet. However the names of kings during this time show vestiges of tradition. There are traces of early naming customs such as first names being made first and family names being retroactively attached, traditional names, and being referred to by first name only in daily life. In the early family name era, the kings of Baekje would first use a traditional name and move on to using a full name with a family name around their time of accession, necessitated by occasions such as exchanges with China. The use of a last name would symbolize and display their status as royalty. The fact that not all royal families of Baekje would routinely use a family name shows that the family name as an indication of a patriarchal society was not yet fully realized. This might have been due to the discrepancy between the actual group of royal relatives and the group using family names. The prevalence of the traditional nature of Baekje names show the limitations of understanding and adopting the family name cust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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