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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 國家의 姓氏 受容과 變遷

The Acceptance and Transition of Family Name in Ancient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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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姓氏는 중국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처음에는 姓과 氏가 분리되어 있었다. 姓과 氏가 지금과 같이 합쳐진 시점은 秦漢시기로 국가 시스템의 정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혈연적인 관계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국가 시스템으로 통제해야 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혈연적 관계인 姓과 시스템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氏가 만들어졌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한반도의 고대국가는 秦漢시대 이후 중국에서 이미 姓과 氏가 합쳐진 시점에 姓氏를 받아들였다. 한반도에서는 언제부터 姓氏를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王姓이 대외적으로 사용된 시점에는 姓氏 문화가 고대 사회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王姓이 책봉과 관련된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점은 4세기이다. 3~4세기 중국은 五胡十六國 시대로 분열의 시기였다. 五胡十六國 중 하나인 西晉은 前漢의 제도를 통해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였고, 그 과정에서 東夷校尉를 설치함으로써 東夷 지역을 통제하고자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교역의 기능도 겸하였다는 점에서 東夷校尉의 역할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4세기는 八王의 亂, 永嘉의 亂, 樂浪․帶方郡의 붕괴로 인해 한반도 국가들은 중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던 창구를 상실하게 되었고, 직접적인 교역을 통해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야만 했다.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역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고대국가는 중국제적 질서에 편입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명과 자신의 이름을 중국에 알려주게 되었으며, 중국은 한반도의 국가들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과정에서 王姓이 중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한반도에서도 姓氏가 확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신라와 다른 姓氏 수용 및 확산 과정을 보인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賜姓을 통한 姓氏 확산이 확인된다. 그리고 기록에 나타나는 姓氏를 살펴보면 賜姓을 받은 姓氏 집단의 일부가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王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백제는 기록의 부재인지는 몰라도 賜姓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또한 고구려․신라와는 달리 두 글자 姓氏인 複姓이 많이 보인다. 또 개로왕과 동성왕이 중국에 보낸 表를 보면 개로왕은 고구려․신라와 마찬가지로 왕족 위주로 백제 사회를 재편하려고 했지만, 한성의 몰락과 웅진으로의 도읍지 이동으로 인해 왕족 이외의 다른 성씨 집단도 많이 보이게 된다. 이는 고구려․신라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한반도 고대 국가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姓氏를 취득했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姓氏 확산을 했다고 생각되지만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姓氏 확산 과정이 달랐고, 특히 백제의 경우는 고구려, 신라와 확연히 구분되는 성씨 확산 과정을 보인다.

Abstract

Family name (姓氏) is a concept that originated in China, and although last name (姓) and clan (氏) were separated at first, they merged into one during the Qin (秦)-Han (漢) period. The ancient state of the Korean Peninsula accepted the family name after the Qin (秦)-Han (漢) period. It is not known when they used family name (姓氏), but at the latest, the culture of family name (姓氏) existed in ancient society. Interestingly, however, king's family name (王姓) for the first time in the records related to the book stick. And that time is in the 4th century. China was a period of division in the Ohosipyukkook (五胡十六國) era. One of the Ohosipyukkook (五胡十六國)'s, West-Jin dynasty (西晉), reorganized the national system through the Han dynast (前漢)'s system and, in the process, tried to control the Dongyi (東夷) region by installing Dongyi Gyowi (東夷校尉), but it also served as a trade function. However, in the fourth century, the collapse of a rebellion of eight kings (八王의 亂), a rebellion of yongga period (永嘉의 亂) and Commanderies of Lelang and Daifang (樂浪․帶方郡) prevented countries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rading Chinese culture indirectly, forcing them to receive advanced Chinese culture through direct transactions. In order to trade with China, the ancient state of the Korean Peninsula had to be incorporated into the Chinese-made order, and in the process, the name of the country and its own name were given to China, and China would establish a treaty-making partnership with the countries o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process, King's family name (王姓) became known to China and family name (姓氏) could be spread on the Korean Peninsula. Although culture has been introduced to the Korean Peninsula, Baekje (百濟) will undergo a process of accepting and propagating family name (姓氏), which is different from Goguryeo (高句麗) and Silla (新羅). Similar to China, Goguryeo (高句麗) and Silla (新羅) are confirmed to have spread family name (姓氏) through give one's family name (賜姓). Although there are some family name (姓氏) groups whose proportion of the ruling class received give one's family name (賜姓), Baekje (百濟) had no give one's family name (賜姓) record, but unlike Goguryeo (高句麗) or Silla (新羅), there were two letters family name (複姓). As such, the ancient Korean Peninsula country has acquired a family name (姓氏) to trade with China. And they were thought to have spread family name (姓氏) like China, but the process of spreading family name (姓氏) differed depending on the situation facing the nation, and this can be confirmed by the fact that Goguryeo (高句麗), Silla (新羅), and Baekje (百濟) had different family name (姓氏) proliferation proc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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