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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백제의 건국신화 정립과 부여씨

The Founding Myth of Baekje and Buyeo clan in the 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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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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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4세기 백제의 건국신화를 분석하고 당시 시대 상황을 살펴, 백제의건국신화와 왕성 부여씨의 성립이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흔히 건국신화는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백제의 경우 현전하는건국신화가 여럿 존재하여 그 실체를 명확히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백제 건국신화에는 그 출자로 부여와 고구려를 언급하는데, 사료를 분석한 결과, 온조가 동명의 아들이라는 인식은 고려 시대의 인식이며, ‘夫’와 ‘扶’의 차이를 통하여 백제와 고구려가 각각 독자적으로 부여의 동명신화를 받아들였음을 엿볼 수 있다. 백제에는 건국신화로 해부루 신화와 동명형 신화가 전해지고, 또 백제의 王姓으로는 解씨와 [扶]餘씨가 언급된다. 해씨의 경우 해부루 신화의 해부루에서 따온 성일 가능성이 크다. 동명의 성은 부여가 아니지만, 동명신화가 부여의 신화라는 점에서 王姓과 건국신화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해부루 신화가 동명신화에 선행하는 건 대다수 연구자가 공감한다. 백제는 처음에 해부루 신화를 건국신화로 하고 해씨를 왕성으로 삼다가, 어떤 이유에서 부여씨로 바꾸고 동명신화를 수용한 것이다. 그 이유는 국제 관계에서의 유리함 때문이었다. 집단의 변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해부루 신화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당시 부여와 동명(Tümen)은 그 위상이 중국의 동북 지역에 널리 퍼져있었다. 본래 동명은 부여만이 아닌 중앙유라시아에 널리 퍼진 이야기였으나, 『論衡』을 통하여 부여가 종주국이 된 셈이다. 부여는 前燕이 왕을 사위로 삼고, 後燕ㆍ 南燕에서 부여씨들이 고위 관직에 오를 정도로 당시 중국의 동북 지역에서 위상이 강하였다. 또 이 3∼4세기 무렵 前燕을 비롯한 유목민족 집단은 자신의 姓을 그들의 기원에서 따 한자식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는 晉과의 교섭이 목적이었다. 부여라는 성 역시 이때 등장하였으며, 그 성의 연원 역시 유목민족 집단의 성과 통한다. 이러한 면에 비추어 봤을 때, 백제는 4세기 중국 동북 지역과의 연결 속에서 부여씨를 왕성으로 삼고 나아가 동명신화를 채택하였다. 특히 근초고왕대에 국가의 정치체제를 정비하는 일환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founding myth of Baekje in the 4th century and examine the situation of the time to reveal that the founding myth of Baekje and the establishment of Buyeo clan, royal family name, are an extension. Commonly, the founding myth is associated with the identity of the state. Buyeo and Goguryeo are mentioned as origin of Baekje’s founding myth.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historical records, the perception that Onjo was the son of Dongmyeong seems to be a perception of the Goryeo Dynasty. In addition, the difference between Bu(夫) and Bu(扶) shows that Baekje and Goguryeo independently accepted the myth of Dongmyeong in Buyeo. In Baekje, the myth of Haeburu and the myth of Dongmyung are handed down as founding myths, and Hae(解) clan and [Bu(扶]Yeo(餘) clan are mentioned as the royal family name of Baekje. In the case of Hae clan, it is likely to be a surname derived from Haeburu of the myth of Haeburu. Dongmyung’s surname is not Buyeo, b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oyal family name and the founding myth can be confirmed in that the myth of Dongmyung is one of Buyeo. It is agreed by most researchers that the myth of Haeburu precedes the myth of Dongmyung. Baekje first accepted the myth of Haeburu as its founding myth, and took Hae clan as the royal family name. Later, for some reason, it was changed to Buyeo and accepted the myth of Dongmyung. That was because of the advantag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On the other hand, since the group did not change, the myth of Haeburu did not disappear and remained in the form that is now passed down. At that time, Buyeo and Dongmyeong(called Tümen) had a widespread status in northeastern China. When Former Yan(前燕) took the king of Buyeo as his son-in-law and Buyeo clan rose to high-ranking government posts in Later Yan(後燕) and Southern Yan(南燕), it can be seen that Buyeo’s status was high in the northeastern region of China at that time. Also, around the 3rd and 4th centuries, nomadic groups, including Former Yan, began to create family name by converting their origins into Chinese characters for the purpose of negotiating with Jin(晉). The family name ‘Buyeo’ also appeared at this time, and it is in line with the one of the nomadic group. From this point of view, Baekje adopted Buyeo as a royal family name and accepted the myth of the Dongmyeong in its relationship with northeastern China in the 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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