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의 出系와 천하관
The Lineage and World View of King Muwang in the Baekje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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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파른본 『삼국유사』 王曆에 나오는 무왕의 王名, 이름, 小名은 『삼국유사』 권제2 무왕조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무왕의 어릴 때의 이름은 서동임이 분명하다. 서동을 法王의 아들로 보는 견해는 서동이 마를 캐며 가난한 생활을 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서동은 몰락 왕족 출신이었다. 그래서 서동은 빈한하게 생활하였던 것이다. 서동 시절 무왕의 성은 鬼室氏였지만 즉위 후 本宗인 扶餘氏를 칭하였다. 서동은 왕이 되기 5년 전인 595년경에 원자 의자를 낳았다. 이때 의자를 낳은 부인은 익산지역 가문 출신으로 보인다. 즉위 이후 무왕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의자를 태자로 책봉할 시기에 沙乇氏 왕후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무왕에게는 적어도 3명의 왕비가 있었다. 무왕은 익산을 경영하면서 국가사찰인 미륵사에는 9층목탑을, 왕실 사찰인 제석사에는 7층목탑을 세웠다. 이는 고려 태조가 부처님의 힘에 의해 후삼국을 통일하려는 목적에서 개경에 7층탑을, 서경에 9층탑을 세운 것과 유사하다. 이로 미루어 무왕이 익산에 9층탑과 7층탑을 세운 것은 삼국을 일통하겠다는 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왕호를 격상시킨 것이 대왕호이다. 대왕호는 천자보다는 아래지만 諸侯王 보다는 상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舍利奉迎記」에는 무왕이 ‘대왕폐하’로 나온다. 이는 무왕이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는 왕(대왕)을 칭하면서 국내에서는 황제로 군림한 것을 보여준다. 이를 外王內帝 의식이라 한다. 이때 백제의 附庸國은 탐라국이었다. 만민을 ‘撫育’하는 일은 제왕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리봉영기」에는 왕비가 만민을 무육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는 무왕 말기에 왕비가 정치의 實權을 장악한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무왕이 병에 걸쳐 정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사탁씨 왕후는 무왕의 長壽를 바라는 마음에서 썩어 없어지는 목탑 대신 영구히 가는 석탑을 만들었다. 그 결과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 최초의 석탑이 되었다. 한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은 比例美와 均衡美를 갖춘 최고의 傑作이다. 백제의 석탑 造營은 신라에 전해지고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석탑 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Abstract
The king name, name, and childhood name of King Muwang seen in the Lineage of the Kings in <<Samgukyusa (semantically,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which was owned by Pareun, are consistent with the contents of King Muwang in Volume 2. So, it is clear that the childhood name of King Muwang was Seodong. The view that Seodong was the son of King Beobwang cannot explain that Seodong harvested yams and lived a poor life. It is reasonable to understand that Seodong lived in poverty as a descendant of the ruined royal family. Seodong became a father of the Prince Royal Uija in around 595 AD, five years before he became the king. Seodong's wife who gave birth to Uija at that time seems to be a woman from Iksan. After the enthronement, King Muwang married Princess Sunhwa, the third daughter of King Jinpyeongwang of the Silla Kingdom to boost the royal authority. By the time when he selected his eldest son as the crown prince, he took a woman from the Sataek clan as a queen. So, it can be said that King Muwang had at least 3 queens. While King Muwang governed Iksan, he built a 9-storey wooden pagoda in Mireuksa temple, which was a national temple, and a 7-storey wooden pagoda in Jeseoksa temple, which was a royal temple.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built 7-storey pagoda in Gaegyeong and 9-storey pagoda in Seogyeong with the aim of unifying the Later Three Kingdoms through Buddha's power. This suggests that King Muwang's establishment of 9-storey and 7-storey pagodas in Iksan was based on the intention of unifying the three kingdoms. The Great king is the upgraded title of king. The Great king had a status lower than the emperor but higher than a feudal lord. However, in <Saribongyeongi>, King Muwang is expressed as ‘His Majesty and the Great King’. This shows that King Muwang called himself the (Great) King in diplomatic relations with China, and reigned as the emperor domestically. This is called the consciousness of the king for foreign affairs and the emperor for domestic affairs. Although the power to ‘care for’ all people was vested only in the emperor, <Saribongyeongi> shows that people were cared for by the queen. This suggests that, at the end of the reign of King Muwang, the queen had the de facto power of politics. The main reason for this was that King Muwang suffered from illness and lost interest in political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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