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新羅 交流史에서 본 新羅求法僧
从唐和新罗之间的交流史来看, 新羅求法僧的活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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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조공, 책봉, 기미주 설치, 혼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국과 관계를 맺었다. 이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조공관계지만, 당과 거리가 가깝거나 특별한 관계에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책봉관계 등을 중복적으로 맺었으며, 이런 관계가 중복될수록 양자는 더 긴밀해졌고 당은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였다. 신라는 조공․책봉관계에 더해 ‘기미주관계’까지 맺었으므로 당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할 수 있다. 책봉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런 관점은 외면적으로 일본의 책봉체제론이나 중국의 번속이론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책봉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은 서역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오아시스 나라들을 기미부주로 편성하고 그 인민을 ‘백성’으로 간주하였다. 고종 현경 3년(658)에는 이러한 기미부주가 소그드지역에도 설치되는데, 이들 지역의 경우에는 실질보다는 명목적 성격이 강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의 인민들 역시 기미부주가 설치된 만큼 이념적으로나마 당의 기미부주 ‘백성’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소그드 상인은 대거 당 내지로 들어와 활발하게 상행위를 영위하였다. 당이 이들에게 入境을 허가할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였지만, 그들은 당의 법적 규제를 넘어 거의 일상적으로 당 내지를 왕래하였다. 이렇게 外來 소그드상인들이 당에서 활발한 교역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의 정책 이외에도, 교역을 권장하고 후원하는 본국의 정책과 함께 당 이전부터 구축되었던 서역인 또는 소그드인 교역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에 있어서는 고종 용삭 3년(663) 4월 계림주도독부가 설치되었으나, 당과의 사적 교류 상황은 그 전후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는 당의 법제적 규제에 더해, 교역을 통제하는 신라의 정책 및 상업망의 부재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당 후기에 이르면 신라인 역시 제반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당 내지에 자신들의 교역망을 구축하고 활발한 교역활동을 펼치게 된다. 당 전기에 입당한 신라구법승은 적어도 62인이 넘는데, 그 다수는 사적 구법승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상선을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배를 구하여 입당하였다. 그런데 당 전기는 율령제를 기초로 한 국가질서가 비교적 잘 유지되었고, 신라구법승 역시 過所 발급을 비롯한 규정을 따라야 했다. 일본승 엔닌은 율령제가 크게 이완된 당 후기에 있어서도 이러한 규정을 따라야 했지만, 재당신라인 특히 장보고가 세운 法花院의 도움으로 과소를 얻었다. 이와 비슷하게 당 전기에 사적으로 입당한 신라구법승들 역시 당의 사찰로 들어가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법승들은 승려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졌기에 일반인에 비해 당 내지를 여행하기에 훨씬 유리하였던 것이다. 다만, 외래 소그드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신라구법승 역시 제도적으로 出境의 제한을 받았다. 엔닌이 귀국할 때 황제의 허락이 내려오지 않아 오랫동안 청원한 이후에야 겨우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신라구법승이 귀국을 위해 황제의 허락을 청원한 기록도 보인다. 하지만, 사적으로 입당한 구법승이 귀국할 때 모두 황제의 허락을 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당 후기의 절도사체제 하에서는 사실상 많은 사적 구법승들이 매우 자유롭게 당을 왕래하였을 것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당 전기에 사적으로 입당한 구법승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가 점차 증가하였고, 또한 장안 일대를 벗어나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불교만이 아니라 당의 정치, 지리, 상업 등에 관한 정보와 인적 관계망을 계속 축적해 나갔고, 이러한 상황은 당 후기에 신라인이 재당신라인사회를 형성하고 사적 교역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Abstract
唐朝是以朝貢、冊封、羈縻州的設置和婚姻等多样的方式成为與周边过之间的关係。其中最普遍的方式是朝貢和冊封关係, 若重复这些关係, 两者之间的关係逐渐成为密切, 唐朝提供更好的友好政策。新罗是这些朝貢和冊封关係以外, 还成为羈縻州关係, 而與唐朝之间有非常密切的关係。从册封的角度来看, 表面上看来與日本的冊封體制論、中国的藩屬理論相似, 但册封的不同意义的角度来看, 新罗的册封关係是與日本和中国的主张不通。唐朝是向西域扩大领域过程中, 以绿洲国家设立羈縻府州, 那里的人民也变为唐朝的百姓。高宗顯慶3年(658)在粟特地区设置羈縻府州, 但这地区不是实际上的设置, 而是名分的性格更强。不过由於羈縻府州的设置, 那里的人民会成为唐朝的百姓, 此後粟特商人经常在唐朝的内地进行了交易活动。唐朝是让这些商人只准许一個法律制约, 即入境後不能回国, 但是他们违规经常可以往来唐朝的内地。高宗龍朔3年(663)4月, 在新罗设置鷄林州都督府, 但與唐朝之间的個人交流情况是没有很大的变化。这主要原因是唐朝的法律制约、控制交易的新罗政策和还没成立商業網。但是到了唐後期, 新罗人也由於諸條件的变化, 在唐内地建设自己的交易網後, 增加进行交易活动。唐前期入唐的大部分新羅求法僧是個人身份的求法僧。日本僧圓仁是律令制已瓦解的唐後期入唐时, 还严格官員的法律监督, 因此由於張保皐设立的法花院的帮忙, 终於可以得到住宿之处。唐前期入唐的個人身份的新羅求法僧也是很可能因唐的寺刹的帮忙, 才留下来。求法僧是因以僧侶为特殊的身份, 比一般人有利於唐內地的旅行。不过新羅求法僧也出境时, 通过唐朝的法律制约, 但是個人身份的新羅求法僧的回国时, 并不一定得到皇帝的准许。尤其是在唐後期節度使體制下, 实际上很多的個人身份的新羅求法僧可能是自由往来新罗和唐朝。从統計来看, 唐前期個人身份的新羅求法僧是逐渐增加, 而且長安地区以外他们的活动范围也扩大起来。经过这种情况, 他们唐的政治、地理和商业方面等逐渐积累情报和人的关係網。到了唐後期, 新罗人在唐新羅人社會的形成和個人交易的展开成为重要的基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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