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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후반 신라의 영접의례 구성 - 당ㆍ일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Composition of Silla's Reception Ceremony in the Lat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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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7세기 후반 신라의 영접의례 구성을 전후한 시기 당과 일본의 그것과 비교ㆍ검토하여 신라의 영접의례가 갖는 고대 동아시아사적 보편성과 신라사적 특수성을 밝힐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大唐開元禮』에 따르면 당의 영접의례는 蕃臣禮에 입각하여 체계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蕃臣禮뿐만 아니라 舅甥禮, 兄弟禮, 敵國禮 등의 예식도 함께 운용되었다. 당의 영접의례를 구성하는 이들 예식은 敵國禮 》 兄弟禮 〉 舅甥禮 》 蕃臣禮 순으로 계서화되어 있었다. 7세기 이후의 신라는 당 황제의 蕃臣이라는 예적 지위를 자임하면서, 당에 대해서는 事大禮를, 당의 번국인 다른 주변국에 대해서는 交隣禮를 준용하였다. 이 같은 사대와 교린의 원칙 외에도 안승의 고구려국ㆍ보덕국에 대해서는 兄弟禮와 舅甥禮를, 탐라국에 대해서는 蕃臣禮를 적용하기도 하였다. 7세기 후반의 신라 영접의례 구성이 갖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당의 영접의례를 수용하여 운용하되, 원칙적으로 당에 대해서는 事大禮, 당의 다른 번국에 대해서는 交隣禮를 적용하였다는 점에 있었다. 이 때문에 蕃臣禮 중심인 당의 영접의례는 참고할 수 있으나 그대로 신라의 현실에 적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신라는 예학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이해도를 높였고, 그 결과 당제를 변용하여 事大禮와 交隣禮라고 하는 나름의 영접의례를 구성하고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는 당의 예제를 고스란히 이식하여 실질적으로 蕃臣禮 이외에는 구체적인 규정을 갖추지 못한 일본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신라의 영접의례 구성은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까지 균형있게 감안한 노력의 결과물로, 전통적 華夷觀에 입각하여 현실의 국제관계와는 동떨어진 관념상의 영접의례 구성을 고수했던 당의 경우와도 대조적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was prepared to understand the universality and specificity of Silla's reception by comparing and reviewing the composition of the reception ceremony operated by Silla in the late 7th century with Tang Dynasty and Japan. According to the Da-Tang Kaiyuan Li (大唐開元禮), the reception ceremony of the Tang Dynasty was systematized based on the formality of beonshin(蕃臣禮). However,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formalities of gusaeng (舅甥禮), hyeongje (兄弟禮), and jeokguk (敵國禮) were actually operated together. After the 7th century, Silla accepted its ideological status as a vassal of the Tang Dynasty emperor. For this reason, the formality of sadae (事大禮) was applied to the Tang Dynasty and the formality of gyorin (交隣禮) was applied to other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Japan. In addition, the formality of hyeongje (兄弟禮) and the formality of gusaeng (舅甥禮) were applied to Anseung (安勝)'s Goguryeo (高句麗) and Bodeok-guk (報德國). On the other hand, the formality of beonshin (蕃臣禮) was applied to Tamna-guk (耽羅國). One of the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the composition of the Silla‘s reception ceremony in the late 7th century is that it accepted and operated the Tang Dynasty's reception ceremony, but unlike the Tang Dynasty, the principles of Sadae (事大) and Gyorin (交隣) were applied. For this reason, it was possible to refer to the Tang Dynasty's reception ceremony, which was centered on the formality of beonshin (蕃臣禮), but it could not be applied to the reality of Silla as it was. Therefore, Silla studied Confucianism actively, and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form its own composition of reception ceremony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Sadae (事大) and Gyorin (交隣) by transforming the Tang Dynasty's system. This is clearly different from the case of Japan, which transplanted the Tang Dynasty's composition of reception ceremony as it was and did not have specific regulations other than the formality of beonshin (蕃臣禮). In addition, the composition of Silla's reception ceremony was a result of considering not only the cause but also the practicality in a balanced manner. This is in contrast to the case of the Tang Dynasty, which adhered to the composition of an ideological reception ceremony far from real international relations based on the traditional Hwaih-gwan (華夷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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