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의 對唐交流에 대한 考古學的 檢討
Archaeological Review of the Silla and Tang Dynasty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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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의 대당교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문헌사 연구에 비해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에서 이글에서는 고고학적 관점에서 신라의 대당교류를 검토하였다. 고고학적 검토는 경주에서 출토된 대당교류의 증거들과 중국에서 확인되는 신라관련 유적, 유물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문헌기록은 신라의 사신, 유학승, 구법승과 상인들이 당에 머물며 오갔으며, 신라에서 당으로 전해진 물목을 전해준다. 그러나 중국 내 신라관련 유적, 유물로는 신라 승과 관련된 사찰유적이 대부분이다. 신라 왕실이나 사신 또는 신라에서 간 물품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지 않고, 건릉에 배장된 석인상이나 장회태자무덤의 사절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뿐이다. 이에 비해 경주에서는 적석목곽분단계부터 중국 문물이 부장되었으며, 당 문물은 화폐, 청동거울, 자기 등 완제품으로 수입된 것과 당식 대금구처럼 당의 문물을 충실히 모방하여 제작된 것 그리고 신라식으로 변용된 것 등이 있다. 이외에도 중국의 도용, 12지, 서체 등 관념이나 당풍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은 신분질서를 드러내거나 사리장엄구나 진단구, 장골기 등의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특히 당문물을 모방하거나 변용한 기물들은 8세기 중엽 이후 크게 유행하였고 9세기대에는 신라식으로 변용되기도 하였다. 경주의 문물에서 보이는 대당교류의 증거들이 8세기 중엽 이후 크게 유행하면서 신라에서 유행한 당풍의 배경으로 북부 연안항로와 중부 횡단항로, 남부 횡단항로 등의 시간을 두고 개발된 여러 교통로를 들 수 있다. 따라서 대당교류의 고고학적 검토 결과, 정치, 외교적인 측면 외에도 8세기 중엽 이후 신라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했던 당풍은 불교의 확산과 함께 교통로의 개발에 따른 다양한 인적 교류가 배경이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archaeologically reviews exchanges Silla and Tang dynasty with archaeological data from both countries. And the study is focused on the archaeological remains from Gyeongju and Silla site in China since middle of the 6th century. Historic records say that the shrines of Silla, Buddhist monks and merchants stayed in Jangan capital of Tang dynasty. However, most of the archaeological remains associated with the Silla people in China are Buddhist temples and Silla royal family or shrines are uncertain. It is not known the information about the Silla goods in China. Tang dynasty objects identified in Gyeongju are bronze coin, ronze mirrors, porcelain etc. Some were made in the Tang Dynasty, and some were copied from the Silla among excavates in Gyeongju. And these were used to represent order or for special purposes –Cremation ware or sacrifice goods. Artifacts imitating or transforming Tang's goods, such as stamped earthenware and lead glaze made in Silla, have become popular since the mid-eighth century. It can be glimpse into the face of Tang-style that was popular in Silla from the earthen miniature and Chinese Zodiacs excavated from historic site in Gyeongju. Archaeological data suggest that the transportation routes between Silla and Tang were developed sequentially, along the northern coastal route, the central transverse route, and the southern transverse route. Therefore, as a result of archaeological review of exchange between Silla and Tang dynasty, it was inferred that Tang style throughout Silla society became the background of various human exchanges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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