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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연행사와 청 문인의 교류양상

Exchanges Between the Joseon Mission and Qing Literary Men in the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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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개항기 한중관계사는 청의 정치적 간섭과 그것에 벗어나려는 조선의 움직임에 주목해 왔다. 이와 같은 연구는 기존의 한중관계의 갈등적 측면을 상세히 밝혀주었지만, 전통적 관성에 관한 부분은 간과되었다. 조선과 청의 전통적 관계의 주요부분은 儀禮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使臣 파견으로 유지되었으며, 이것은 1895년 청이 일본에 의해 패배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887년 조선 정부는 청 황제가 親政을 한다는 詔書를 받았다. 이에 기존의 관행에 따라 축하 사절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서울의 유력 가문 후손인 이승오가 正使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이승오가 연행을 떠난 시점은 조선이 러시아와 결탁하려고 했다는 풍문으로 인해, 청의 조선에 대한 압박이 심각했던 때였다. 따라서 정치적 상황 상 이승오의 연행은 긴장의 연속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오는 연행 내내 청 문인들과의 만남으로 분주했다. 그것도 연회를 수반한 詩會가 대부분이었다. 개항기 조선·청 관계에서는 정치적 상황과는 다른 영역이 존재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우선 이승오의 교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교류의 대상을 개인, 문인그룹, 만주 관원으로 구분해서 분석할 것이다. 아울러 역사의 연속적인 측면을 파악하기 위해, 19세기 조선·청 문인교류의 흐름 속에서 이승오의 교류가 가진 의미를 위치 짓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개항기 조선·청 관계에서 갈등의 국면과는 다른 부분을 드러내줌으로써 양국 관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Abstract

The history of Korea-China relationship at the period of opening the port had paid attention to the political interference of Qing and the movement of Joseon which tried to escape from it. Studies related to this have revealed the conflictory aspect in the Korea-China relationship in detail, but they ignored the aspect of traditional relationship. The Joseon-Qing traditional relationship was mostly maintained by accrediting envoys to keep the ritual order, which was kept until Qing was defeated by Japan in 1895. In 1887, the Joseon government received a message that the emperor of Qing would rule his country by himself. So, according to the previous practice, it was decided to accredit the mission to congratulate it, and Lee Seung-oh who was a descendant of the influential family was selected as an official envoy. However, the point Lee went to Peking was the time Qing’s pressure over Joseon was severe because of the rumor that Joseon tried to be in league with Russia. Therefore, Lee’s visit to Peking in that political situation could be the endless tensions to him. However, Lee was busy in meeting with Qing literary men all the time of the period of visit. And most of the meetings were poetry meetings accompanied by parties. It means that there was a field different from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Joseon-Qing relationship in the period of opening the port.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exchanges of Lee Seung-oh in detail. It will classify the objects of exchange into the individual, literary group and Manchurian officials. In addition, it will find out the meaning of the Lee’s exchange in the stream of the Joseon-Qing literary men exchanges in the 19th century, to investigate succession of history. This work will show the aspect different from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Qing in the period of opening the port, and it will be the basis of viewing the general appearance betwee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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