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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寶山事件後在華韓人的自衛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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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중국어와문학

초록

1931년 7월 중국 동북지방 장춘에서 발생한 만보산사건은 급기야 한국에서의 화교배격폭동을 촉발시켰다. 중국 내의 여론은 들끓었고 보복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중국 거주 한인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동북지방의 한인들은 신변 안전의 위협은 물론 중국당국의 대규모 축출설로 불안이 더욱 가중되었다. 중국 거주 한인들은 보호를 요청할 본국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생존권을 지켜야하는 힘겨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국내동포에게 화교배격폭동을 멈추고 중국국민과 정부에게 재중 한인의 고충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하여 중국 거주 한인들은 ① 해당지역 중국 당정기관 또는 사회유력인사를 방문하여 개별적으로 설득을 진행하고, ② 성명서, 선언문 그리고 호소문등을 발표하여 일제의 음모를 폭로하며, ③ 피해 화교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일본 요인을 암살함으로써 재중 한인의 이미지개선에 노력했다. 중국의 신문매체들은 재중 한인들의 호소 노력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천진의 ≪大公報≫, 상해의 ≪時報≫, 남경의 ≪中央日報≫와 같은 당시 중국의 주요 신문들은 한인이 발표한 성명서의 전문을 게재하는 등 이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중국 신문매체들의 긍정적인 보도에 힘입어 재중 한인들의 호소 노력은 한중 양 민족 간의 오해를 불식하고 보복정서를 해소시키는 동시에 한인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국임시정부가 비상수단을 채택하여 일황과 군정요인을 암살함으로써 중국국민의 지지와 국민정부의 원조를 받게 되어 후일 항일공동전선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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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張存武, "近代中韓關係史資料彙編 第十一冊" (1990), 國史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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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遼寧省檔案館, "萬寶山事件" (1991), 吉林人民出版社
  5. 高珽烋, "李承晩與韓國獨立運動" (2004), 延世大學出版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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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辛珠柏, "滿洲地區韓人民族運動史: 1920-1945" (1999), 亞細亞文化社
  9. 黃敏湖, "在滿韓人社會與民族運動" (1988), 國學資料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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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楊昭全, "東北地區朝鮮人革命鬪爭資料彙編" (1992), 遼寧民族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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