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효종대 한나라 군주에 대한 인식 전환과 의미
The New Perception of Han’s Emperor Wudi in the King Hyojong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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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조선에서 한나라 문제(文帝)와 무제(武帝)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17세기 효종의 즉위 전후 어떠한 특이점을 보이면서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양상과 역사적 맥락을 탐구한다. 조선은 성리학을 기반이념으로 왕도정치를 지향하는 국가였으며, 이러한 이상에 따라 한나라 문제와 무제에 대한 보편적인 평가가 존재했다. 유가의 사평(史評)에서, 문제는 안민을 지향한 덕과 인의 도덕군주의 상징이었다. 반면 무제는 문제와 대조적으로 부국강병을 위하여 공업의 달성을 지향하는 엄혹한 군주로 여겨졌다.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이러한 인물평에 동의하며 현실 정치에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말 성리학자 이곡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며, 이이, 윤선도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17세기 조선은 두 번의 전쟁 이후에 와해된 국가의 기반을 재건하고자 국가운영에 대한 각종 개혁론이 등장하는 경세의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즉위한 효종은 무제의 흉노 정벌의 공업을 인정하며 무제가 문제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하였다. 송시열과 이유태 같은 산림은 이러한 국왕의 발언을 청에 대한 국왕의 복수의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였다. 효종의 시대에 한무제의 공업을 인정하게 된 인식의 등장은, 왕도정치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대외환경의 영향으로 양병을 추진하면서 국가주의적 정책을 시행해야 했던 현실의 갈등을 상징한다. 이를 통하여 왕도정치를 지향하던 시대에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부국강병과 안민(安民)의 상이한 가치가 현실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plores how the perception of Emperor Han Wendi and Emperor Han Wudi in Joseon changed after the ascension of King Hyojong in the 17th century, with historical contexts. The Joseon Dynasty was pursuing the Rule of Right based on Neo-Confucianism as an ideological foundation, and the universal evaluation of Han Dynasty affairs and the emperor was based on this ideal. In Confucian elites Commentary on History, Han Wendi was a symbol of a moral monarch of virtue and benevolence. Wudi, on the other hand, was seen as a despotic monarch who, in contrast to Wendi, sought to achieve ‘Rich Nation, Strong Army’. Joseon elites also agreed with these characterizations and used them appropriately in real-world politics. This can be seen in the case of the late Goryeo Yi Gok, as well as in the cases of Yi I, Yun Seon-Do, and others. In the 17th century, Joseon was in a period of reformation, when various theories of state management emerged to rebuild the country's infrastructure after the two great wars. king Hyojong judged Wudi as superior to Wendi due to his subjugation of Xiongnu. Sanrim such as Song Si-yeol and Yi Yu-tae accepted and affirmed the king's remarks as the king's vengeance against the Qing Dynasty. The emergence of recognition of Han Wudi’s work symbolizes the conflict between the ideals of the Rule of Right and the reality of having to implement statistic policies. Through this, we can see how the different values of ‘the Rule of Right’ and ‘the Rule of Might’, ‘Rich Nation, Strong Army’ and ‘Proper Governance’ were accepted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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