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촌 양득중의 시대 인식과 대응 양상 - 「사직소(辭職疏)」와 「등대연화(登對筵話)」를 중심으로 -
Dukchon Yang Dukjung's Awareness of Time and Aspect of Confrontation - Focusing on “Sajikso(辭職疏)” and “Dungdaeyeonwha(登對筵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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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덕촌 양득중(1665년(현종6)-1742년(영조18))의 시대 인식과 대응 양상을 고찰하기 위해 기획하였다. 연구 대상은 『덕촌집(德村集)』에 수록된 「사직소(辭職疏)」와 「등대연화(登對筵話)」를 중심으로 삼았다. 덕촌의 관직 생활은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여러 사건으로 정국이 수차례 뒤바뀌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대 노론 세력이 득세하고 그들이 정치・경제・사상・문학 분야 등을 장악하면서 이에 반하는 세력들은 가차 없이 이단으로 내몰리고, 모든 분야에서 적대시되었다. 덕촌은 반대파인 노론으로부터는 명재 윤증의 제자라는 이유로 배척당하지만, 영조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망 속에 말년까지 관직을 제수받았다. 하지만, 60대 이후에는 연속적으로 사직소를 제출하면서 당대 기득권층의 허위 의식과 폭력에 항거하였다. 또한, 최고 권력자인 임금과 직접 대면하여 논의를 펼친 「등대연화」에서도 덕촌은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굽하지 않는 강개함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알력과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덕촌은 반대파를 무조건 비방하거나, 자신의 당파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기보다는 탕평(蕩平)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당대의 부조리에 대응해나갔다. 이 두 가지는 「사직소」와 「등대연화」에서 반복적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덕촌의 상소문은 의례적인 투식(套式) 문구보다는 본인이 관철하고자 하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경우가 많다. 당대 기득권층의 전횡이나 정계(政界)와 정책의 문제점 등에 대한 논의가 많은 점도 이러한 특징에 기인한다.
Abstract
This research studies Dukchon Yang Dukjung's (1665-1742) awareness of time and aspect of confrontation, focusing on “Sajikso (辭職疏)” and “Dungdaeyeonwha (登對筵話)”. Dukchon's bureaucratic life was in the middle of fierce struggles between the Noron faction and Soron faction, and several changes of regime due to a series of events. In this era, the Noron faction controlled the areas of politics, economy, philosophy, and literature, and regarded the adverse faction as heterodoxy, becoming hostile to the whole area of the adverse faction. Dukchon was excluded from the Noron faction because he was the disciple of Myungje Yunjeung. However, he was granted public office even in his latter years with wholehearted support and trust from King Yungjo. Despite this, he submitted his letter of resignation, the “Sajikso (辭職疏)” when he was in his sixties, protesting against the contemporary vested rights' false consciousness and violence. In “Dungdaeyeonwha (登對筵話)” he also showed an iron will in confronting the King without bending his conviction and principles. Dukchon coped with the irrational situation of continuous political conflicts and frictions by focusing on equality (蕩平) and substantiality (實事求是) rather than unconditionally supporting on his own faction or criticizing the adverse faction. This outlook was repeatedly suggested in his “Sajikso (辭職疏)” and “Dungdaeyeonwha (登對筵話)”. Dukchon did not like to use stereotypical phrases in his letters appealing to King, instead he directly suggested the subject he wanted to achieve. Due to these characteristics his letters had many arguments on the abuses of power by the contemporary vested rights, the political world, and the problem of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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