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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 양득중의 가계와 추숭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amily lineage and reverence in Yang Deuk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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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실학과 양명학 분야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덕촌 양득중에 대한 가계 분석과 死後 追崇에 관한 연구이다. 그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먼저 그의 선대, 외가, 처가, 자손들의 연혼 및 세거지 변천 등의 가계 분석을 통해 양득중의 삶의 기반을 찾고자 하였다. 아울러 양득중이 죽은 후 남겨진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문집 발간, 영정 봉안, 묘비 건립 등에 대한 후손들의 추숭 작업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학포 양팽손은 己卯名賢으로 도학적 이상사회를 구현하려던 학자였다. 그의 자손들은 文學과 行誼가 저명한 家學과 兩亂時 節義가 있었고, 덕촌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가학의 전통을 집안의 강학공간인 ‘小心齋’를 통해 배워 나갔다. 고조 양산형과 증조 양범용은 하동정씨, 선산임씨 가문과의 연혼을 통해 영암지역의 재지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덕촌의 외증조인 은봉 안방준은 ‘도학과 절의가 하나인 眞儒’로 성혼의 학맥을 잇고 있는데, 성혼의 외증손 명재 윤증과 덕촌의 師弟의 연원이 도출된다. 덕촌의 삶의 전환기는 부인 반남박씨와 첫 스승 아천 박태초의 죽음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시남 유계의 문인인 아천은 덕촌 처가와 인척으로 맺어진 師門이었다. 이후 덕촌은 연안이씨와의 재혼하였고 명재 윤증의 高弟가 되어, 영암 영계에서 공주 덕촌으로 이사하며 관료와 학자로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덕촌의 자녀는 5남으로 특히 차남 양순흠의 妻家인 부안의 김서경 가문이 주목된다. 김서경은 반계 유형원과 제자이며, 그의 아들은 덕촌과 교유하였고, 손자는 덕촌의 門人이 된다. 셋째 아들 양순채는 보성의 학포 문중에 養子로 갔는데, 당시 노론의 辛壬士禍와 연계된 보성 문중에 소론 양득중이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넷째, 다섯째 아들 양순해와 양순희의 묘와 자손의 세거지가 부안지역으로 확인된다. 덕촌의 외증손 윤인기는 윤광소의 문인으로, 덕촌의 아들 양순해가 수집한 유문을 가지고 『덕촌집』을 발간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최근 현지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德村義草』 등 6책 145편의 덕촌의 遺文은 향후 시급한 연구가 필요하다. 덕촌의 영정은 그의 고향인 영계에 1864년 영당을 만들어 보관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덕촌의 묘비명과 묘갈은 1907년에 와서야 짓고, 1917년에 건립되었다. 묘비 건립을 주도한 양신묵은 보성으로 養子 간 양순채의 8세손으로 당대의 양명학자인 난곡 이건방에게 비문을 요청하였고, 난곡은 비문에서 ‘덕촌에 대한 존숭의 마음, 아천 박태초의 양명학적 가르침, 후손들의 黨禍로 인한 덕촌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

Abstract

Deokchon(德村) Yang Deuk-jung(梁得中) was an important figure in the field of Silhak(實學) and Yang-ming Studies(陽明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article examined the household analysis of Yang Deuk-jung and the respect after his death. The current study reexamines his life and thoughts. First, he tried to find the basis for his life through family analysis of his ancestors, mother-in-law, wife-in-law, the marriage of his descendants, and the change of residence. In addition,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footsteps left behind after Deokchon died, the work of respect on the publication of books, archive of portraits, and the construction of tombstones was also considered by the descendants. Yang Paeng-son was a scholar who tried to realize an ideal society. His will is that literature and thought have been preserved since childhood. He learned through his family’s school, Sosimjae(小心齋). His great-grandfather Yang San-hyung and his great-grandfather Yang Beom-yong married major families in the Yeongam region and expanded their regional base. Ahn Bang-joon, Yang Deuk-jung’s great-great-grandfather, was a true Confucian scholar whose academic and prosperity were one. He succeeded Seong-hon’s academic tradition; and Yang Deuk-jung’s teacher, Yoon Jeung, was also mistreated by Seong-hon. The turning point of Yang Deuk-jung’s life was fulfilled by the death of his first wife and first teacher, Park Tae-cho. He is a scholar related to Yang-ming Studies. After remarrying with his second wife, Yun Jeung, his lifelong teacher, became a key student. He moved from the Yeong-am area to the Gong-ju area and added depth as a bureaucrat and scholar. His second son, Yang Soon-heum, among five sons, married the Kim Seo-gyeong family in Buan. In particular, it is noted that Kim Seo-kyung is a student of Ryu Hyeong-won, a famous scholar. The third son is Yang Soon-chae, who was adopted to the Boseong area. His maternal great-grandson, Yoon In-ki, published his book, Deokchonjib(德村集). In the course of a recent field study, I discovered 145 important documents related to Yang Deuk-jung. Urgent research is needed in the future. His portrait is kept in his hometown. He built a shrine to honor him. Tombstones are erected in his graveyard. Lee Kun-bang wrote in 1907, and Yang Shin-muk, a descendant, built it in 1917. Lee Kunbang is a Yang-ming scholar. Lee Kun-bang honored Yang Deuk-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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