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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京華士族의 禮學 - 近齋 朴胤源의 『近齋禮說』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Ritual Theory of kyunghwasajok(京華士族) in the 18th Century -focused on Geunjaeyeseol of Park Y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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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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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京華士族의 핵심 인물이었던 近齋 朴胤源(1734~1799)의 예학을 통해 18세기 조선 사회의 변화와 관련된 예의 실천과 예설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박윤원은 이재-김원행을 잇는 노론-낙론계 산림이자 왕실의 외척으로서, 당시 조선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는 인물이었다. 그는 낙론의 人物性同論을 기반으로 ‘爲人之道’를 배워야 한다는 입장에서 『小學』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예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박윤원은 예의 근본인 敬을 닦아 올바른 예를 실천하는데 주목하였다. 잘못된 시속의 예를 강하게 비판하였지만, 근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에는 대체로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예는 ‘制心’과 ‘順情’을 원칙으로 하므로 민을 쉽게 따르게 하여 교화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였고, 예를 통해 이단을 저절로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박윤원은 예학에 밝아서 變禮에 합당한 예설을 제시하였고, 서울․경기 일대 학자들의 예설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사후 후손들에 의해 편찬된 『근재예설』은 그의 예학과 예문답을 포괄하고 있는 예서이다. 『근재예설』은 『예의유집』의 목차를 그대로 따라서 활용하기 편리한 ‘類書’ 형태로 편찬되었고, 『예의유집』에서 집대성한 조선 학자들의 예설을 바탕으로 예 담론을 더욱 확장시켰다. 『근재예설』에는 67명 이상의 인물과 900건에 달하는 예문답이 등장하는데, 박윤원을 중심으로 노론-낙론계 학연과 반남 박씨, 안동 김씨의 혈연으로 이어진 인물들 간의 활발한 예설 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 『근재예설』은 18세기 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화사족의 예설과 예 담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서라고 할 수 있다. 『근재예설』을 통해 18세기 예의 실천에서 발생하는 變禮가 더욱 증가하고 그에 대한 담론 역시 늘어나는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예 담론에서 드러나는 예학적 성격을 검토하면, 첫째, 입후에서 二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본생친에 대한 강복의 원칙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입후가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계후자의 계후자 본생친의 본생친 등 복잡한 친족관계가 나타나고 상복의 원칙인 은혜와 의리의 실현이 착종되는 변례의 문제가 생겨났다. 이러한 변례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예설들을 고찰하고 절충하여 하나의 定例를 제시하는 것이 당시 예 담론의 핵심이 되었다. 한편 입후의 의리를 강조하면서도 계후자의 상복은 正體의 장자복과 구분하는 주장이 통용되었다. 노론-낙론의 입장에서 송시열이 지지했던 사종설의 원리를 고수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조선후기 가례의 실천이 사회 전반에 걸쳐 강조되면서 서얼층의 行禮와 관련된 논의들이 확대되었다. 庶孼도 家禮를 실천하는 주체로 인정되면서 서얼과 관련된 의례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첩과 서얼을 奴主 관계에 따라 신분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양반의 친족 질서 내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얼이 嫡母 유무와 관련없이 生母에게 삼년복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신분에 의해 적모에게 壓屈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서자는 친족 내에서 衆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보편적인 종법질서의 틀 속에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dissertation illuminated the development of the study of ritual(禮學) in chosun of the 18th century, focused on Geunjaeyeseol of Park Yunwon. The study of ritual in chosun was getting progressed as the discourse of byeonlye(變禮) was expanded and the ritual literature of big volume was publised in the 18th century. Park Yunwon was a key figure of kyunghwasajok(京華士族), in late 18th century as the master of Nak-school and maternal relative of royal family. Geunjaeyeseol was published after Park Yunwon(朴胤源)'s passing, which follows the organization of Yeuiryujip for practical purpose. He was very keen at the study of ritual, so he could provided proper opinion to the byeonlye through historical research,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mutual exchanges of the ritual discourse around Seoul-Kyunggi area. The ritual discourse of Geunjaeyeseol embraced the practice of ritual and discourse triggered with social change. First, as iphu(立後) became widespread, discussions of diverse variation of the byeonlye grew more and more the principle of gangbok(降服) was emphasized not to make two line of descent with adoption. The rule of mourning as a realization of loyalty and grace suffered a confusion with overlapping of iphu. We can see that both devoted party and ecletic party coexisted in the process. Second, as the offspring of concubines was gradually admitted as one of subject of family rite, conventions related to concubine began to being established. That is due to the fact that they are not treated in the context of slave-master relationship, but of family order. The offspring of concubines could wear three-year mourning clothes for his biological mother, and that was because they are not treated with status. As sons of concubines was granted a position as firstborn son's younger brothers(衆子) in clan, they were gradually admitted in the agnatic principle(宗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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