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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漢城의 開市와 잡거문제 - 한성개잔 및 철잔 교섭을 중심으로 -

開港期漢城の開市と雑居問題 ―漢城開桟及び撤桟交渉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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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에서는 잡거지 한성의 공간적 성격의 애매함에 착목하여, 그 성격규정과 잡거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구상과 논리를 조선과 각국 간의 한성개잔 및 철잔 교섭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영조약 이래 조선이 각국과 체결한 각 조약의 제4관에서는 ‘조계’, ‘조계 밖 10리 이내’, ‘내지’라고 하는 공간들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거주의 주체를 기준으로 위의 공간들은 각기 외국인거류지, 조선인과 외국인의 잡거지, 조선인거주지에 해당하는데, ‘조계’를 중심으로 ‘조계 밖 10리 이내’와 ‘내지’가 차례로 그 바깥쪽에 위치하는 동심원적 형태를 띠고 있었다. 조약체제하에서 한성은 위의 공간들 중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있어야 했으나, 외국인 거주구역의 설정 없이 성내 전역이 잡거지로 개방된 한성은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게다가 위의 각 공간은 행정의 주체, 사법권의 관할, 토지가옥의 거래방법 등을 달리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잡거지 한성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조선정부와 각국 대표 사이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한성이 일본이나 구미와의 ‘조약’이 아니라 청국과의 ‘장정’에 의해 한성개잔권이란 이름으로 처음 개방된 사실로부터 비롯되었다. 한성개잔권은 조선과 청국 간의 종속관계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본래는 ‘조약’과 명확히 구분되어야 했으나, 청국과 각국 사이에, 나아가서는 조선과 청국 사이에서도 필요에 따라 ‘장정’과 ‘조약’은 서로 참조되었고, 그 결과 ‘장정’과 ‘조약’ 어느 한 쪽만을 가지고는 잡거지 한성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선정부는 한성의 공간적 성격을 기본적으로 ‘내지’로 간주하였으며, 외국인의 철잔을 통해 잡거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각국은 한성의 공간적 성격을 ‘조계 밖 10리 이내’의 잡거공간으로 재해석하거나 한성 내에 잡거구역을 설정함으로써 종래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여기에 조선정부의 재정부족과 최혜국대우 조항의 굴레까지 더해져 결국 조선정부의 한성철잔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그 실패의 과정을 겪으며 ‘자주체면’이라는 새로운 대응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정부의 잡거문제에 대한 인식은 본래 대내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한성 내 조선상인들의 연이은 철시운동과 외국인 고문 데니의 조력을 배경으로 이제 잡거문제를 조선의 ‘자주체면’, 즉 국제법상 주권국가의 대외적 위신문제로서 취급하게 된 것이다. 한성이라는 잡거공간은 이후 조선의 ‘자주독립’이 시험되는 장으로 변모해 가게 된다.

Abstract

本稿では雑居地漢城の空間的性格の曖昧さに着目し、その性格規定と雑居問題をめぐる、さまざまな思惑や対応論理について、朝鮮と各国間の漢城開桟及び撤桟交渉を中心に検討した。朝英条約以来、朝鮮が各国と結んだ各条約の第四款では、「租界」·「租界外十里以内」·「内地」といった三つの空間について規定していた。居住の主体を基準とすれば、上の空間はそれぞれ外国人居留地、朝鮮人と外国人との雑居地、朝鮮人居住地にあたり、「租界」を中心に「租界外十里以内」と「内地」が同心円状に広がって位置する形となっていた。条約体制下の漢城は、上記空間のいずれかによって規定されるべきであったが、外国人の居住区域の設定なしに城内の全域が開放されたため、いずれの空間にも当てはまらなかった。さらに、各空間ごとに行政の主体、司法権の管轄、土地家屋の取引方法などが異なっていたため、雑居地漢城の性格を規定することは条約の適用をめぐる朝鮮政府と各国代表間の争点として先鋭化した。このような問題は、漢城がそもそも日本や欧米との「条約」ではなく、清国との「章程」により漢城開桟権という名目で初めて開放されたことに起因する。 漢城開桟権とは、本来朝鮮と清国との宗属関係に基づくものであるため、「条約」とは明確に区別されるべきであったが、清国と各国のあいだで、さらには朝鮮と清国のあいだですら、必要に応じて「章程」と「条約」は互いに参照され、その結果「章程」と「条約」のある一方だけで漢城の性格を規定することはできなくなった。朝鮮政府は、漢城の空間的性格を基本的に「内地」とみなし、外国人の撤桟を通じて漢城における雑居問題を解決しようとした。これに対し各国はあるいは漢城の空間的性格を「租界外十里以内」の雑居空間と再規定し、あるいは漢城内に雑居区域を設定することにより、従来の既得権利を保持しようとした。こうした各国の対応に朝鮮政府の財政不足という問題まで加わり、結局朝鮮政府の漢城撤桟計画は実現に至らなかった。しかし朝鮮政府はその失敗の過程を通じて、「自主体面」という新たな対応論理を見出すことになる。朝鮮政府の雑居問題に対する認識は、本来私的で対内的なレベルに留まっていた。ところが朝鮮商人による撤市運動と外国人顧問のデニーの助力を背景として、朝鮮政府は雑居問題を最早朝鮮の「自主体面」、すなわち主権国家の対外的な地位問題として捉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以後も漢城という雑居空間は、朝鮮の「自主独立」の試される場として再認識されてい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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