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대 奎章閣의 궁궐 내 書籍 收藏에 관한 검토
A Study on the Keeping of Books in the Palace by Gyujanggak during the Reign of King and Later Emperor G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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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조는 御製를 봉안하고 서적을 관장하는 관서로서 奎章閣을 창설하였다. 정조대에는 규장각의 장서가 약 3만 책 가량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들은 현재 대체로 ‘규장각 도서’로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그 사이의 시기에 해당하는 정조 사후에서 고종대에 이르기까지 규장각의 궁궐 내 書籍의 收藏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일제는 순종대부터 대한제국 국유의 도서들을 통폐합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그 직전의 원 질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고종대 궁궐 내 규장각 서고의 서적 수장 양상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고종 초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 사업을 추진했고, 고종은 경복궁으로 移御했다. 규장각 역시 국왕의 이어에 따라 근무공간을 옮겼다. 경복궁 내 규장각의 집무처에 부속된 서고로는 聚奎樓가 있었다. 한편 창덕궁 내의 규장각 서고들은 옮기지 않았으며 기존 서적들은 그 자리에서 보관되었다. 창덕궁에는 모훈자료 보관이 핵심인 봉모당도 존재했다. 국왕이 경복궁에 임어하는 중에는 창덕궁 수직 겸검서관을 두었고, 국왕이 창덕궁에 임어하는 중에는 경복궁 수직 겸검서관을 두었다. 고종 친정기에는 경복궁의 화재로 인해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는 일이 잦아졌다. 1876년에는 조일수호조규의 체결로 개항을 하였고, 구미열강들과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내외적인 어려움 가운데 개화 정책을 추진하며 위기를 타개해나가고자 했다. 고종 및 순종대 『규장각서목』 중 가장 이른 서목은 바로 이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창덕궁 이문원, 서고, 열고관의 서적의 수장 상황을 점검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종은 개화 서적을 중심으로 많은 서적들을 內下하여 개화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다. 한편 1894년 갑오개혁 이래로 관서 규장각에서 문한기구, 근시기구로서의 성격은 사라지게 되며, 다시 고종이 전제왕권을 강화하는 흐름 속에도 이와 같은 것은 이전 상태로 복구되지 않았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종은 환어할 궁을 경운궁으로 정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가 머물렀던 국난 극복의 상징이자 인근에 각국의 외교공관이 위치해 외교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경운궁의 좁은 궁역은 단점이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복궁에도 일부 정부 기구를 두고 가동한 것이 확인된다. 대한제국기 규장각의 집무처의 위치는 자료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갑오개혁 이래 궁내부 속사가 된 관서 규장각은 문한기구・근시기구로서의 성격이 상실되고 복구되지 않았으며, 고종이 경운궁에 머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경복궁 내의 집무소와 취규루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왕이 규장각신을 가까이에 두고 중용하며 정치에 중요한 자문을 받던 시기와는 달라진 양상이 확인되는 것이다.
Abstract
Immediately after his accession to the throne, King Jeongjo established Gyujanggak (奎章閣) as a government office that kept the king's writings and managed the nation's books. It is estimated that about 30,000 books of Gyujanggak were collected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Most of these books are currently preserved at the Kyujanggak Institute of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fact, from the death of King Jeongjo to the reign of King Gojong, how Gyujanggak kept books in the palace has not been well explained. In particular, Japanese imperialism began to combine books owned by the Korean Empire into one place during the reign of Emperor Sunjong. This is why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management of books in the palace during the reign of King (or Emperor) Gojong, which is the original order just before that. Immediately after King Gojong ascended the throne, Heungseon Daewongun led the project to rebuild Gyeongbok Palace (景福宮). King Gojong moved to Gyeongbok Palace. The officials of Gyujanggak, who had previously worked at Changdeok Palace, moved to Gyeongbok Palace with King Gojong. The name of the library attached to the office of Gyujanggak inside Gyeongbok Palace was Chwi-gyu-ru. The libraries of Gyujanggak in Changdeok Palace were kept without moving. After the mild-1870s, Joseon faced moments of establishing new relations with foreign countries. During this period, the lists of Gyujanggak books in Changdeok Palace were made. King Gojong passionately collected books for enlightenment and made officials of Gyujanggak keep them in libraries. Through the Gabo Reform, Gyujanggak lost its character as an academic organization. King Gojong took refuge and returned to Gyeongwoon Palace after the tragic assassination of the queen by the Japanese. Gyeongwoon Palace was so narrow that some departments of the government were set up in Gyeongbok Palace. As before, Gyujanggak Libraries were located in Changdeok Palace and Gyeongbok Palace, and most of the books were not moved. Furthermore, presumably, Gyujanggak's office also continued to use the Gyujanggak office in Gyeongbok Palace. This may be because Gyujanggak no longer needs to be close to the emperor due to the change in the function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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