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 김택영의 中國滯留期 한시 고찰 -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
Study of Changkang Kim Taekyoung’s Poetry in China - From the Standpoint of the Diaspo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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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滄江 金澤榮(1850~1927)은 을사늑약 직전인 1905년 56세의 나이에 ‘섬나라 일본의 노예’가 되기 싫다며 강력한 항일 저항의지를 표명한 후, 가족을 데리고 중국 通州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300여 편에 이르는 시작품 및 역사관련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는 亡國의 痛恨뿐만 아니라, 고국을 떠나 이주한 중국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다중적 정체성 현상을 보이는 디아스포라로서 고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文章輔國을 위해 노력했고, 광복에 대한 기대와 의지로 대한독립의 희망을 담아 <<校正三國史記>>, <<新高麗史>>, <<韓史綮>>, <<安重根傳>>을 펴내는 등 민족의식의 고취를 꾀했으며, 지속적으로 역사책과 문집을 출판하였다. 디아스포라로서 고국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항일독립 활동을 하는 이승만 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교유하며 중국정부에 우리나라의 독립지원에 대한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김택영이 중국에서 창작한 시작품을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망명객의 탄식을 보이는 시 작품이 있다. 蘇州에서 그곳이 옛 오나라의 수도였음을 떠올리며 亡國의 恨을 탄식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맞이한 「환갑날 아침에」기록한 작품에서는 어두운 시절에 살아있음을 구차하게 여기며 강한 어조로 귀향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모국을 그리는 디아스포라의 의식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고국에 대한 관심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이국땅에서 김택영은 지속적으로 역사서 <<校正三國史記>>, <<新高麗史>>, <<韓史綮>>를 간행하였고, 고국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을사늑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고 고종황제가 양위하는 사건을 듣고 그 비통함을 표현한 시작품이 있다. 또한 「의병장 안중근이 나라의 원수를 죽인 일을 듣고」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높이며 역동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안중근의 높은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시를 통하여 울분과 분통함에 싸인 고국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끝으로 망명한 인사들과의 교유를 통해 이국땅에서 사는 디아스포라의 고단한 삶을 서로 위로하며 고국의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창호와의 교유를 읊은 시에서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요절한 윤현진을 그리며 안타까워하고 있고, 신규식과의 교유를 노래한 작품 「謝申總長圭植西曆新年之問」에서는 ‘누가 포로 같은 나를 남은 삶이나마 고향에 돌아가게 하리오’라고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여 디아스포라의 고단한 삶을 느끼게 한다. 삶의 근거지를 떠나 낯선 타국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삶과 그 속에서 겪은 인간적 갈등을 문학으로 풀어낸 김택영의 작품을 살핌으로써 한국문학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구한말 한시문학의 명맥이 높은 수준으로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Changkang Kim Taekyoung(1850~1927) manifested resistance to being enslaved by Japan just before the Eulsa annexation treaty and left Korea for Tongju in China with his family. He made 300 asylum poetry including historical publications. As the national destiny declined, he fled Japanese oppression into China in order to commit himself to patriotic writings. As a diaspora, he couldn’t accord national identity with ethnic identity in exile. For the hope of Korean independence, he issued “Corrected Samguk Sagi” “New History of Goryeo” “Hansagye”, “Ahn Joong-geun” etc. He kept on publishing history books and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despite of poor conditions. As a diaspora, he associated with Korean political figures working for the government-in-exile including Seungman Rhee. He filed a petition with Chinese government to support Korean independence with other nationalists. Kim Taekyoung’s asylum poems written in China can be classified from the perspective of a diaspora in three divisions. First of all, there are lamentation poets as a refugee. He suffered the country’s ignominy of being conquered by Japan. When he went to Soju to see a famous scholar, Euwol, he reminded the old capital of Onara. It reflected a bitter grief for national ruin of Joseon. In his other poem, “The Sixty’s birthday morning”, diaspora identity is also seen in many lines. He confessed his humiliating life in the dark age as a miserable exile in a foreign country and expressed a strong will to go back to homeland. Next, he composed poets of sincere patriotic concerns for the country’s fate. He continuously printed the history books and watched the country’s changing situations. Eulsa annexation treaty and Gojong’s abdication from the throne made him to pour out deep grief. He was longing for the restoration of Korean sovereignty. On “Hearing from Ahn Jung-geun’s righteous deed to kill an enemy”, he honored him as a noble patriot as well as Korean pride. he tried to raise national identity and self-esteem in a positive way. I considered his patriotic writings as diaspora poetry to contribute his efforts for the country’s restoration. Finally, he kept company with political figures and exiles. They shared sufferings. The poem about corresponding with Ahn Chang ho, he mentioned sorry affair for YounhyunJin who was an independence activist and died at an early age. The poem about communicating with Shingyusik, he deplored deeply his inevitable life, “Who could bring me home for the rest of my refugee life?” In the poetry, Kim Taekyoung can be understood as an miserable diaspora. Kim Taekyoung struggled with his writings through his life to express his sufferings and identity conflicts. He had a tough time to leave homeland and to survive in a strange foreign land. His lamentation over the national ruin and a humiliating colonial situation enabled him to issue a variety of patriotic writings. I examine Kim Taekyoung’s asylum poetry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in the Korean Empire remarked high level of Chinese prose and can be classified from the standpoint of diaspora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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