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廣開土王陵碑」의 新來韓穢 -출신지와 고구려의 인식을 중심으로-

‘Newly moved Han and Ye(新來韓穢)’ shown on the Inscription of the King Gwanggaeto's tombstone -With the location from which Han and Ye came and the Perception of Koguryo People toward them-

1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韓과 穢라는 명칭은 고대 한반도 중남부 지역 주민의 종족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광개토왕릉비」에도 등장하는데, 새로이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확장한 영역에서 차출해 온 수묘호를 ‘新來韓穢’라 표현하였다. 「광개토왕릉비」에 등장하는 신래한예를 대상으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 지역 주민을 韓과 穢로 호칭한 과정과 그 인식을 알아보는 것이 이 글의 주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신래한예의 출신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래한예의 출신지는 광개토왕의 남정과 수묘호가 배정되는 과정을 통해서 알아보았다. 광개토왕의 남정은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미쳤지만, 수묘호는 전쟁 결과 확고히 영역화하고 지방으로 편제한 지역에만 배정하였다. 때문에 수묘호가 배정된 지역은 황해도와 경기도 북부 지역에 집중되었고, 한강이남에서는 충주 지역과 그곳을 잇는 거점 지역만이 해당한다.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韓과 穢로 처음 지칭한 것은, 낙랑이 그 지역과 교섭하면서부터이다. 고구려가 이 지역 주민을 韓과 穢로 지칭한 계기 또한 낙랑을 복속하고 그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낙랑의 것을 수용한 것이다. 그 뒤 고구려는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직접적인 대면과 경험을 통해 韓과 穢의 거주지와 정체성을 명확히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韓과 穢는 고구려 천하에 속한 복속민이며 지방민이었다.

Abstract

韓と穢という名称は古代の朝鮮半島の中南部地域住民の種族性を指す名称である。これは広開土王陵碑にも登場するが、新しく朝鮮半島の中部の地域に拡張した領域に割り当てた守墓戶を新來韓穢といって表現した。広開土王陵碑に登場する新來韓穢を対象に、4世紀後半から5世紀前半まで高句麗が朝鮮半島の中部地域の住民を韓と穢と呼ぶようになた過程とその認識を調べることがこの論文の主目的である。このために、まず新來韓穢の出身地について調べた。新來韓穢の出身地は広開土王の南征と守墓戶が割り当てられた過程を通じて調べた。広開土王の南征は朝鮮半島の南部地域まで達したが、守墓戶は戦争の結果確固として領域化し地方に編制した地域だけに割り当てられた。それゆえ、守墓戶が割り当てられた地域は黃海道地域と京畿道北部地域に集中され、漢江以南では忠州地域とそこを結ぶ拠点地域だけに割り当てられた。朝鮮半島の中南部地域を始めて韓と穢と称したことは樂浪がこの地域と交涉するときからである。高句麗がこの地域の住民を韓と穢と称したきかけもまた樂浪と交涉しこの地域に進出しなから、樂浪の認識を踏襲したのである。樂浪で韓と穢を区分するのと同じく高句麗も韓と穢をはっきりと区分していた。しかし広開土王陵碑の韓と穢は中国史書の認識と違って高句麗の天下に属した服属民であり地方民であった。

참고문헌 (67)

  1. 盧泰敦,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1992), 駕洛國史蹟開發硏究所
  2. 徐永大,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1992), 駕洛國史蹟開發硏究所
  3. 鄭求福, "譯註 三國史記" (1997), 韓國精神文化硏究院
  4. "漢書" (1962), 中華書局
  5. "南齊書" (1997), 中華書局
  6. "周書" (1997), 中華書局
  7. 忠州 彈琴臺 土城Ⅰ -2007年度 發掘調査 報告-, "中原文化財硏究院", ~ (2009)
  8. 忠州 塔坪里 遺蹟(中原京 추정지) 시굴조사보고서, "國立中原文化財硏究所", ~ (2009)
  9. 中原文化財硏究院, "忠州 豆井里 遺蹟", ~ (2010)
  10. 忠州 塔坪里遺蹟(中原京 추정지) 제3차 시굴조사보고서, "國立中原文化財硏究所", ~ (2012)
  11. 孔錫龜, "廣開土王陵碑의 東夫餘에 대한 考察", 韓國史硏究, 70 (1990), 韓國史硏究會
  12. 공석구, "《광개토왕릉비》守墓人 烟戶 記事의 考察", 고구려발해연구, 47, pp.33~60 (2013), 고구려발해학회
  13. 金起燮, "彌鄒忽의 位置에 대하여", 韓國古代史硏究, 13, 韓國古代史學會
  14. 金起燮, "백제와 근초고왕" (2000), 학연문화사
  15. 김락기, "高句麗 守墓人의 구분과 立役方式 -廣開土王陵碑 守墓人烟戶條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1), pp.199~228 (2006), 한국고대사학회
  16. 金瑛河, "韓國古代社會의 軍事와 政治" (2002),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17. 金崙禹, "龍巖車文燮敎授 華甲紀念 史學論叢" (1989), 華甲記念論叢刊行委員會
  18. 金賢淑, "廣開土王碑를 통해 본 高句麗 守墓人의 社會的 性格", 韓國史硏究, 65 (1989), 韓國史硏究會
  19. 金賢淑, "4~6세기경 小白山脈 以東地域의 領域向方 -『三國史記』 地理志의 慶北地域 ‘高句麗郡縣’을 중심으로-", 韓國古代史硏究, 26 (2002), 韓國古代史學會
  20. 盧泰敦,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고구려관계 기사 검토", 州史學, 16 (1971), 경주사학회
  21. 盧泰敦, "5세기 金石文에 보이는 高句麗人의 天下觀", 韓國史論, 19 (1988),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22. 노태돈, "광개토왕대의 정복활동과 고구려 세력권의 구성", 한국고대사연구, (67), pp.5~26 (2012), 한국고대사학회
  23. 박대재, "謝承 『後漢書』 東夷列傳에 대한 예비적 고찰", 한국고대사연구, (55), pp.39~70 (2009), 한국고대사학회
  24. 朴性鳳, "廣開土好太王期 高句麗 南進의 性格", 韓國史硏究, 27 (1979), 韓國史硏究會
  25. 朴淳發, "漢城百濟의 誕生" (2001), 서경문화사
  26. 박진욱, "백제·신라에 이웃하였던 靺鞨에 대하여", 력사과학, 3 (1978),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7. 박준형,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연구", 박사, 사학과, pp.2012
  28. 서영일, "고구려의 백제 공격로 고찰", 史學志, 38 (2006), 단국사학회
  29. 徐榮洙, "廣開土王陵碑의 征服記事 再檢討", 歷史學報, 96 (1982), 歷史學會
  30. 서정석, "原州 法泉里遺蹟의 年代", 淸溪史學, 19 (2004), 淸溪史學會
  31. 손영종, "광개토왕릉비를 통하여본 고구려의 령역", 력사과학, 2 (1986), 과학·백과사전출판사
  32. 손영종,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수묘인연호》의 계급적 성격과 립역방식에 대하여", 력사과학, 3 (1986), 과학·백과사전출판사
  33. 梁起錫, "4~5C. 高句麗 王者의 天下觀에 對하여", 호서사학, 11 (1983), 호서사학회
  34. 여호규, "<廣開土王陵碑>에 나타난 高句麗 天下의 공간범위와 주변 族屬에 대한 인식", 역사문화연구, (32), pp.3~48 (2009), 역사문화연구소
  35. 여호규, "4세기 高句麗의 樂浪․帶方 경영과 中國系 亡命人의 정체성 인식", 한국고대사연구, (53), pp.159~200 (2009), 한국고대사학회
  36. 吳吉煥, "「廣開土王碑文」 ‘守墓人煙戶’ 조의 재검토 - ‘新來韓穢’ 36地域을 中心으로", 전통문화논총, 6 (2008), 한국전통문화학교
  37. 우선정, "麻立干 時期 新羅의 對高句麗 關係", 慶北史學, 23 (2000), 慶北史學會
  38. 尹明喆, "廣開土王의 軍事作戰에 대하여 수군을 중심으로-" (2002), 고구려발해학회
  39. 尹武炳, "濊貊考", 白山學報, 1 (1966), 白山學會
  40. 윤용구, "『三國志』 판본과 「東夷傳」 교감", 한국고대사연구, (60), pp.231~277 (2010), 한국고대사학회
  41. 尹龍九, "樂浪豪族의 硏究", 박사, pp.2002
  42. 이강래, "삼국사기 인식론" (2011), 일지사
  43. 李基東, "廣開土王陵碑文에 보이는 百濟關係 記事의 檢討", 百濟硏究, 17 (1986),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44. 李道學, "孫寶基博士停年紀念韓國史學論叢" (1988), 孫寶基博士停年紀念論叢刊行委員會
  45. 李道學, "고구려 광개토왕릉 비문 연구" (2006), 서경문화사
  46. 이성제, "<集安 高句麗碑>로 본 守墓制", 한국고대사연구, (70), pp.181~218 (2013), 한국고대사학회
  47.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48. 이인철, "고구려의 대외정복 연구" (2000), 백산자료원
  49. 林起煥, "광개토왕비의 국연(國烟)과 간연(看烟) -4·5세기 고구려 대민편제의 일례-", 역사와 현실, 13 (1994), 한국역사연구회
  50. 林起煥,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民’의 성격", 高句麗渤海硏究, 2 (1996), 高句麗渤海學會
  51. 장창은, "4~5世紀 高句麗의 南下와 三國의 領域向方 -『三國史記』 地理志 ‘高句麗故地’의 實際(Ⅰ) -", 한국학논총, 34, pp.21~50 (2010), 한국학연구소
  52. 전진국, "'한(韓)'의 유래와 명칭의 형성", 정신문화연구, 35(4), pp.147~185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
  53. 鄭雲龍, "5世紀 高句麗 勢力圈의 南限", 史叢, 35 (1989), 高大史學會
  54. 趙法鍾, "廣開土王陵碑文에 나타난 守墓制硏究", 韓國古代史硏究, 8 (1995), 韓國古代史學會
  55. 趙法鍾, "高句麗의 馬韓繼承 認識論에 대한 檢討", 韓國史硏究, 102 (1998), 韓國史硏究會
  56. 조영광, "7세기 중국인들의 對高句麗 ‘三韓’호칭에 관하여", 백산학보, (81), pp.127~153 (2008), 백산학회[DOI]
  57. 趙仁成, "廣開土王陵碑를 통해 본 高句麗의 守墓制", 韓國史市民講座, 3 (1988), 一潮閣
  58. 최희수, "고구려 지방통치 운영 연구", 박사, 한국사, pp.2009
  59. 那珂通世, "高句麗古碑考", 史學會雜誌, 4(49) (1983)
  60. 三宅米吉, "高麗古碑考", 考古學會雜誌, 2(3) (1898)
  61. 三品彰英, "濊貊族小考", 朝鮮學報, 4 (1953)
  62. 酒井改藏, "好太王碑面の地名ついて", 朝鮮學報, 8 (1955), 朝鮮學會
  63. 三上次男, "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 (1966), 吉川弘文館
  64. 增井經夫, "中国学の歷史書 –中国史学史-" (1984), 刀水書房
  65. 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広開土王碑」硏究序說-" (1989), 岩波書店
  66. 谢保成, "隋唐五代史學" (2007), 商务印书馆
  67. 濱田耕策, "朝鮮古代史料硏究" (2013), 吉川弘文館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